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능력자

gowooni1 2013. 3. 11. 00:57

 

 

 

 

바로 직전 읽은 안나 카레니나와는 전혀 다른 매력. 한 페이지에 압축된 내용이 그리 많지 않아 술술 읽히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기보다 웃을 거리를 많이 던져줘 가볍다. 거장이 거장의 반열에 들었을 때 쓴 책과 신인이 신인의 반열에 들었을 때 쓴 책 두개를 가지고 비교하다가는 저세상에 있는 톨스토이가 오열을 할지도 모르므로 여기까지. '능력자'는 가벼운 책 치고 여운은 은근히 무겁고, 한번 읽었는데 또 한 번 읽어보고 싶고, 이런 문장을 구사하기까지 쌓았을 내공 때문에라도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전통있고 명예있는 정통 문학지를 통해 데뷔한 주인공 남루한은 남루하게도 통장 잔고가 3000원 밖에 되지 않는 거지다. 데뷔한지 얼마되지 않은 왕성한 패기를 몰아 소설집 한권 분량을 썼지만 계약해주겠다는 출판사는 한군데 뿐이고 거기다 2년 후에 출간해준단다. 십년을 만난 연지는 공인회계사에 합격하면서 점점 멀어져가고 그의 아버지 교수라는 사람은 2000만원을 모아오면 연지와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한다. 그러다 그것도 연지의 마음이 허락할 때 가능한 것. 2000만원을 모으기 위해 왕년 권투 챔피언의 자서전을 써주기로 하고, 야설을 써가며 연명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연지는 이별을 선언한다.

 

사실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남루한이 아니라, 왕년 세계 복싱 챔피언 공평수라고, 남루한이 말한다. 화성인 바이러스 짝퉁 금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한 공평수는 자신의 매미의 정기를 받아 우주와 교감할 수 있다고 '구라'를 쳐서 시청자들의 어처구니 없는 냉소사기를 자처한다. 입으로 나온다는 말이 전부 허풍인 것 같은 공평수에게도 그러나 이루고자 하는 꿈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자신이 가장 빛났던 시절로 돌아가 멋지게 은퇴를 하는 것이었다.

 

이 이상의 스토리를 말하게 되면 스포일러가 되니 생략. '능력자'가 보내는 메시지는 어찌보면 정말 남루한데 짠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루저인생이지만 그건 평가 주체를 남에게 두기 때문이지 자신에게 두면 루저가 될 수 없음을,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부합하며 살기만 하면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이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인지는 확신하기 어렵고, 독자는 저자가 A라고 보낸 메시지를 자신의 현재 정신상태, 영혼의 결핍 정도, 주어진 환경, 현재 맺고 있는 관계들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자신만의 B로 받아들일 것이다.

 

 

'문자중독-Reading > 문학*문사철30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0) 2013.06.21
잡동사니  (0) 2013.04.07
안나 카레니나  (0) 2013.03.07
엑또르 씨의 시간 여행  (0) 2013.02.24
여울물 소리  (0) 2013.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