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안나 카레니나

gowooni1 2013. 3. 7. 21:53

 

 

 

 

오랜 숙원 중 하나가 '안나 카레니나', '나나', '채털린 부인의 사랑', '보바리 부인' 을 읽는 거였는데 그 중 하나를 완수했다. 어째서 안나 카레니나가 전세계에서 가장 작품성으로 인정받고 있는지, 어째서 톨스토이가 문학 역사를 대표하는 세계적 대문호인지는 오직 읽어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을 읽으면 1870년대 러시아의 전반적인 상황 속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러시아 상류층의 세계, 농노해방에서 벗어난 농민들의 삶, 정치적 상황, 사교계 등등은 물론 톨스토이가 어떤 식으로 마지막에 종교에 귀의하게 되었는지 그 정신적 루트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오블론스키 백작이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운 것이 들통나 이혼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의 여동생 안나가 찾아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안나는 고위 관리이자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막강한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의 스무살 어린 아내이고 귀여운 다섯살짜리 아들 세료자의 어머니이다. 또 오빠 오블론스키 백작의 아내 돌리와도 무척 친하다. 돌리는 안나의 우아하고 귀족적인 아름다움과 모든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매력을 높이 사고 있는데, 이걸 잘 알고 있는 오블론스키는 안나가 자신의 이혼을 막아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한편, 돌리의 여동생 키티는 이제 막 사교계에 진출한 공작의 막내딸로, 성공적으로 데뷔하여 많은 사람들의 구애를 받고 있었다. 그 중 특히 매력적인 브론스키 백작의 구애에 넘어가 그만 사랑에 빠졌다. 공작은 그런 딸의 심리가 마음에 들지 않다. 공작이 보기에 브론스키는 자신의 막내딸을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줄만한 좋은 놈이 아니었고, 그보다 훨씬 세련되지 못했지만 진실되기로 두번째 가라면 서러운 콘스탄틴 레빈이 더 마음에 든다. 그러나 아쉽게도 키티는 사람의 진실됨을 판단하기엔 나이가 너무 어렸고, 이미 브론스키의 매력에 빠져버린데다 그로부터 곧 청혼이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레빈이 큰 마음을 먹고 모스크바에 올라와 그녀에게 청혼을 했을 때 오직 브론스키만을 생각하며 거절하고 말았다.

 

운명의 장난으로, 키티가 레빈의 청혼을 거절한 그 즈음 브론스키는 그만 어머니를 마중하러 나간 기차역에서 처음으로 안나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브론스키에게 키티는 그저 자신의 매력이 얼마나 여자들에게 잘 적용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경험 상대에 불과했으므로 금방 잊혀졌고, 그 머릿속엔 온통 안나로 가득찬다. 안나 역시 자신과 같은 눈동자 빛을 가진 그에게 사랑을 느끼고 당혹스러워 한다. 결혼 생활 8년 동안 정숙한 귀부인이자 흠잡을 데 없는 어머니로서 모범적이고 성실하게 잘 살아왔는데 이제와서 빠져서는 안 될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게다가 그 상대는 자신이 아끼는 키티가 청혼받기 기대하는 사람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그러나 사랑은 막을래야 막을 수 없어서, 결국 둘은 불과 같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키티에게 거절당한 것에 쓰라린 마음을 부여잡고 레빈은 다시 자신의 거주지 시골로 내려온다. 온통 농사일에 전념하면서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애쓴다. 자신의 농지에서 일하고 있는 농민들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서 대신 더 좋은 생산법을 사용하도록 그들에게 요구하고, 농사 관련 책을 저술하면서 그렇게 시골에 파묻혀 하루하루를 보낸다. 한편 키티는 자신이 원하던 브론스키가 안나에게 떠나버린데다 레빈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것이 이중으로 겹쳐 심각한 병을 앓고 외국으로 요양 여행을 떠난다. 브론스키 역시 안나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며 불같은 사랑을 하지만 도저히 이어질 수 없는 사이라 모든 생활을 안나와 함께 할 수 없으므로 다른 것에 정신과 열정을 쏟으려고 경마에 깊이 빠진다.

 

브론스키와 안나가 제일 처음 마주친 곳이 기차역이라는 점, 그 날 그들이 함께 본 사건이 한 사람이 기차에 몸을 던져 두 동강 난채 죽은 일이라는 것은 얼핏 봤을 때 아무 연관도 없어보이지만 한참의 긴 서사가 지나간 후에야 복선임을 알게 된다. 실제로 톨스토이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도 신문에서 한 여자가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 사건을 읽고 나서였단다. 7부에서 이 복선의 암시는 끝나고, 사실상 거기에서 이야기가 끝났어도 전체 작품 서사상 별 문제는 없을 듯 하지만 톨스토이가 자비를 들여서 굳이 8부까지 집필해 출판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8부에서는 레빈이 기독교에 귀의하게 될 수밖에 없는 정신의 이동경로를 보여준다. 어쩌면 톨스토이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흥미진진한 관계를 깨소금처럼 곁들이고, 실제 알맹이는 레빈의 진지한 삶, 농민들을 위해 사는 삶, 아내와 가족들을 위해 사는 삶, 하나님에게 귀의해 종교인으로서 사는 삶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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