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마어마한 분량의 원작을 고작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어떻게 담았을까 궁금했다. 일단 안나와 브론스키의 연애 자체가 자극적이기 때문에 재미는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단순한 재미 외에도 다른 볼거리가 쏠쏠하다. 기존 영화들이 뮤지컬적 기법을 애용하는 데 이 발상을 응용하여 연극적 기법을 사용했다. 장면과 장면 사이가 연극처럼 이어지는 바람에 처음엔 단순히 오프닝의 연속인 기분이 든다. 그러지 않아도 될 자잘한 소품에까지 연극처럼 보이려해서 약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보다 보면 그런 건 신경도 안 쓰일만큼 몰입도 높은 장면과 등장인물, 스토리에 매혹된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책의 내용이 실제로 보이는 영상이란 사실 감독이 일방적으로 주입하는지라 때로는 기쁘거나 실망스럽거나인데, 이번엔 뭐랄까 다른 감동이다. 대혹한의 땅을 달리는 기차가 설마 어마어마한 눈더미를 이고 있을 줄은 몰라서 설국雪國의 배경에 한 번 감동하고, 우울하고도 화려한 러시아 상류 귀족층의 분위기와 문화에 어쩐지 제정러시아의 한 면을 알게 된 것 같아 눈과 기분이 즐겁다. 영화를 흥미 위주로 만들어야 해서 그런지 키티와 레빈의 비중이 현저하게 적고, 안나의 검은 백조 같은 팜므 파탈적 매력과 브론스키의 옴므 파탈적 매력이 한껏 흘러 넘친다. 제법 여운이 오래 남도록 잘 만들었다. 브론스키 역을 맡은 잘 생긴 애론 테일러 존슨이 고작 1990년생이라는 것과 스무살도 더 넘는 나이차가 나는 여자와 결혼한 유부남이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여운이라면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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