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영화-MOVIE

웜 바디스 Warm Bodies

gowooni1 2013. 3. 16. 23:31

 

 

일단 좀비가 나오니 설정이 괴기스럽다. 세기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추정되는 좀비들은 사람을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고 그 좀비들에게 신체의 일부를 물리거나 먹힌 사람 역시 좀비가 되어버린다. 좀비 중에는 자제력을 지킨 보통의 좀비와 마지막에 희망을 버리고 스스로를 먹어치워버린 극단의 괴물 보니로 그 등급이 나뉜다. 좀비는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보니들은 해골의 양상이다. 좀비나 보니나 인간을 먹어야만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지만 좀비끼리는 서로를 공격하지 않으며 인간을 먹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데 반해 보니에게는 그런 것들마저 남아있지 않다.

 

 

너무나 배고픈 좀비소년은 일행과 함께 어쩔 수 없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인간 사냥에 나선다. 운 좋게 좀비들의 세상에 나온 한 무리의 인간 일행을 발견하는데, 거기서 좀비소년은 한 인간 소녀에게 한 눈에 꽂혀버린다. 마침 먹어치운 인간이 소녀의 애인만 아니었더라도 그런 감정이 깊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인간의 뇌를 먹으면 그 기억도 고스란히 갖게 되며, 뇌를 먹혀버린 인간은 좀비가 되지 않는다. 좀비소년이 소녀의 애인 뇌까지 다 먹어버린건 어찌보면 비극이자 다행이다. 소녀는 자신의 애인이 좀비가 된 모습을 안 봐서 다행이고, 좀비소년은 소녀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녀 줄리에게 반해버린 좀비소년 R은 그녀를 데리고 자신의 아지트에 데려온다. 이렇게 좀비가 데려온 인간에게는 일종의 '손님'이 되어 다른 좀비들에게 공격당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깔린다. 하지만 이 약속이 언제까지 지켜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좀비들은 늘 배가 고픈 상태이고, 줄리가 R과 함께 있지 않을 때에는 당연히 줄리는 그냥 좀비들의 먹잇감으로 보일 뿐이며, 그들의 세상에는 좀비가 아니더라도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하는 보니들이 언제 어디서나 깔려있기 때문이다. 줄리는 R이 있는 세상이 너무 무섭고 배가 고프고 집이 그리워 인간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건 쉽지 않다. 줄리에게 홀딱 빠져버린 R이 옆에 있어만 달라고 애원하고, 어차피 R없이는 인간 세상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R은 줄리를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어차피 잠이라는 것을 잘 수도 없고 달리 할 일도 없기 때문에 R은 줄리만 보면서 좋아한다. 줄리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먹을 것을 갖다주는 게 좋고, 줄리가 자면 자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심장박동이라는 것이 없는 좀비들에게 있어 R은 이상한 현상도 발견한다. 줄리를 보면서, 줄리와 손을 잡으면서 심장이 뛰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R에게 있어서 줄리는 삶의 행복이자 살아가는 희망이자 이유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줄리를 다시 돌아가게 놔준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줄리를 잃으면 다시 이 희망적인 감정도 잃어버리고 다시 아무 생각없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인간 사냥이나 하다 보니가 되거나 인간에게 뇌를 맞고 영원히 죽어버리거나 둘 중 한 신세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이 하고 싶다는 걸 어찌 막겠는가. R은 자신이 줄리의 애인을 먹어치웠다는 것을 고백하고 줄리는 결국 인간의 세상으로 돌아간다. R은 아무 희망이 없는 좀비들의 세상으로 터덜터덜 걸어온다. 동료들에게 돌아왔을 때 R은 자신과 같은 무리의 좀비들을 마주한다. 아무런 희망이 없어 죽거나 보니가 되어버릴 좀비들이 아니라, 자신과 줄리가 손을 잡은 모습을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는 걸 경험한, 그러니까 뭔지 모를 희망을 경험한 좀비들이 왜 그녀를 그냥 그렇게 보내주었냐고, 다시 줄리를 보고 싶지 않냐고, 어서 줄리를 만나러 가라고 응원해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세기말이고 인간의 정신을 가진 자들은 언젠가 자신들도 전부 좀비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후덜거리고 있는데 좀비가 인간세상으로 들어가는 게 쉽지 않다. 들어가도 들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다행히 R은 줄리 애인의 뇌를 먹어치워 그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으므로 좀비세상과 인간세상을 단절하는 벽을 뚫는 비상게이트를 알고 그리로 몰래 들어가 줄리의 집 앞으로 간다. 이제 여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부터 얻은 모티프는 더욱 뚜렷한 양상으로 보인다. 줄리는 알고보니 줄리엣과 이름이 비슷하고 엄청 잘난 군인 아버지의 보호를 받으며 대저택에서 공주처럼 살아가는 소녀였고, 당연히 R은 들키면 군인 아버지의 총알을 뇌로 관통당하여 영영 죽을 운명이다. 과연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날것인지 심각한 비극으로 끝날것인지가 이제 궁금하다. 세익스피어의 모티프에 충실하고 기존 좀비영화들과 비슷하게 흘렀던 전반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보면 비극일것도 같고, 좀비가 사랑에 빠진다는 황당한 설정을 보면 어찌어찌 해피하게 끝날 것도 같다. 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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