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교육에 별로 열의가 없는 부모 밑에서 서로간의 우애만으로 건강하고 밝게 자라온 베티앤 남매. 오빠인 케니에게 건달기가 없잖아 경찰의 요주의 인물이긴 했지만, 그는 자기 딸을 사랑하고 가정을 중시하는 가장이었다.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그들 남매의 삶에 그늘이 드리웠다. 케니 집 근처 컨테이너 집에서 한 여자가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되었는데 가장 주력한 용의자로 케니가 지목된 것이다. 별 강력한 알리바이가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진짜 문제는 위증자들이었다. 바람난 케니의 전 와이프와, 지금은 별로 관계도 없는 옛 애인이 법정에서 케니가 범인이라고 거짓 진술을 했고,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 중 피해자의 혈액타입과 다른 O형이 마침 케니의 혈액형과 일치한다는 증거에 따라 케니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베티앤은 억울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오빠가 살인같은 것을 저지르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베티앤이 가장 잘 알았다. 그러나 기득권을 가진 세상은 너무나 견고했고, 자신과 오빠는 그저 세상에서 놀아나는 힘없는 일개 백성일 뿐이었다. 변호사들은 아무도 케니를 변호하려들지 않았고 오히려 진짜 그가 범인이 아니냐는 식으로 생각했다. 그렇게하여 베티앤은 남모르게 결심을 한다. 학사를 취득하고, 로스쿨에 입학한 후,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당당하게 변호사의 신분으로 오빠의 무죄를 증명하고 감옥에서 꺼내기로. 장장 18년에 걸칠 이 여정의 첫머리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이혼을 선고한다. 남편이 봤을 때 베티앤은 이미 지나버린 일에 너무 집착하고, 두 아들이 있는 엄마로서 현실에 충실한 행복한 아내와 너무 거리가 멀었다.
어찌어찌하여 베티앤은 가장 늙은 학생으로 로스쿨에 다니지만 삶은 늘 벅차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엄마로서의 역할을 원하고, 별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자신의 학비와 아이들 교육비까지 벌려니 매일 밤 늦도록 바에서 일을 해야 하고, 그러자니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매번 레포트 제출도 못하고, 간신히 낀 스터디 그룹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늙은 학생에게 어울리는 냉대를 한다. 게다가 감옥에 있는 케니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툭하면 자살기도를 하다 독방에 갇힌다. 모든 것의 코너에 몰린 기분일 때, 아이들은 아버지와 지내는 편이 낫겠다는 마지막 폭격을 날린다. 더 이상 세상을 버틸 자신이 없어진 베티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낸 것은 그녀와 같은 연배의 늙은 동기 아브라다.
아브라와 함께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베티앤은 오빠를 건져낼 희망의 빛줄기를 발견한다. 때는 이제 막 유전자 검사가 범인을 찾는데 도입되는 시기였다. 혈액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하면 진범을 찾을 수 있다는 기사를 읽은 베티앤은 이거야말로 오빠를 구출해낼 절호의 방법이라 확신한다. 유전자 검사로 진범을 가려내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베리 변호사에게 메일을 보내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 하고 희망을 걸지만 역시 현실은 만만치 않다. 유전자 검사를 기다리는 케이스가 엄청나게 밀려있으며, 베티앤의 사건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거라는 거다. 그러나 베리는 그녀에게 보다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건 변호사인 자신이 증거를 수집하여 작업착수까지 걸리는 시간이고, 만약 로스쿨을 다니는 베티앤이 하루빨리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진짜 변호사 자격증으로 직접 증거를 찾아오면 오빠를 감옥에서 꺼내는 일은 훨씬 빨리 진행될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이런 어마어마한 기회의 떡이 주어졌는데 불굴의 베티앤이 못해낼 리 없다. 그녀는 당당하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다.
여기서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 영화가 재미가 없다. 변호사의 자격을 갖춰 증거를 찾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눈앞이 깜깜해질 일이 기다린다. 케니 워터스 사건 당시 취합하였던 증거물은 이미 없앤지 오래됐다는 거다. 보통 사건의 증거물은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라도 최대 10년이 지나면 없애도록 되어 있고, 경찰에서는 오래전에 최종 법정에 보내버렸다. 대법원에서는 옛날 옛적에 이미 없애버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며 안됐지만 케니 워터스 사건의 증거물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매는 낙담한다. 무엇때문에 베티앤이 이혼을 하고 아이들을 빼앗겨가며 학위를 따고 변호사까지 되었는데, 이제와서 증거가 없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케니는 다시 한 번 자살을 기도하고, 베티앤은 좌절 속에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접 대법원까지 찾아가 한번만 더 증거를 찾아봐달라고 사정한다. 여기서 정말 증거가 없는 것으로 나오면 또 영화가 진행이 안된다. 이 마지막 지푸라기에서 케니 워터스 사건의 증거물이 담긴 박스는 오랜 먼지 속에서 발견되어 나온다.
그 옛날 단순히 혈액형이 같았다는 이유로 진범으로 몰린 케니는 유전자검사라는 최첨단 방식을 통해 현장에 흩날린 혈흔의 소유자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는다. 이제 곧 무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벗어날 거라는 기대는 또 한번 좌절한다. 검찰은 케니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 100% 확증된 것이 아니므로, 즉 공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그를 풀어줄 수 없다고 한다. 여기서 이제 베티앤과 아브라, 베리 변호사 세명의 합동 작전이 시작된다. 이미 케니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된 상태에서 추가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그 옛날 위증을 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그것이 위증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거기에 서명을 받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법이거든, 이라는 베티앤의 말처럼 옛날의 위증자들에게 서명을 받는 것도, 검찰의 판결이 잘못이었다는 판결을 받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래도 해냈다. 케니가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생활을 시작한지 18년만에, 드디어 베티앤은 오빠를 세상 빛 아래로 끌어내는데 성공한다.
메사추세츠 주가 아니었다면 이미 케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거야, 라는 베티앤의 대사가 여운에 남는다. 유전자 검사로 누명을 벗은 사람들은 많지만 그 중 17명은 이미 사형수였다는 엔딩 크레딧도 서글프다. 케니를 유죄로 몰아 감옥에 넣은 경찰을 상대로 상당히 많은 보상금을 받아냈다는 말에 그나마 약간의 위안도 얻는다. 무엇보다 컨빅션은, 픽션이라면 절대 안겨줄 수 없는 감동의 깊이가, 무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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