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여울물 소리

gowooni1 2013. 2. 9. 00:45

 

 

 

 

조선 말기 전기수의 이야기치고는 상당히 무겁다. 처음에는 말 잘하는 전기수와 한 여인의 사랑 이야기인 줄 알고 몰입했는데 이윽고 집 나가 떠도는 남편 찾아 삼만리 이야기인가 싶다가, 동학 농민 운동의 세세한 역사적 스토리가 전개되며 스케일이 점점 커지고는 이윽고 임오군란에 걸쳐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 체결되는 등의 이야기까지 숨가쁘게 이어진다. 전기수 이신통이 천지도(동학) 교민으로 전국을 활주하며 다닐 동안 그를 사랑하는 연옥은 그의 흔적을 쫓아다니며 조금씩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간다. 이 복잡하고 끝날 길 없는 역사의 중간을 이야기 배경으로 삼은 작가가 대체 이야기의 끝을 어느 지점으로 삼을 것인가가 더 궁금해서 끝까지 쫓아가보니 결국 연옥이 신통을 만나고,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신통이 죽어버리고 나서야 끝난다. 늘 가슴이 조마조마하던 연옥은 차라리 신통이 죽어버렸을 때 차분하지만 관도 없이 멍석에 쌓여 묻혀있던 그의 유골을 이장할 때 머리에 남아있던 중년의 희끄무레한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눈물 흘린다.

 

이 짧은 한 권에 녹아 있는 다양한 역사적 이야기와 설탕 버무리 같은 사랑 이야기와 혼란스러운 조선 말기를 살아가던 민중들의 생활과 그것에 생기를 넣어 전달하는 평소 절대 접하기 힘든 희귀 어휘들의 향연까지, 음, 역시 황석영답다고나 할까.

 

 

'문자중독-Reading > 문학*문사철30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나 카레니나  (0) 2013.03.07
엑또르 씨의 시간 여행  (0) 2013.02.24
창백한 언덕 풍경 A Pale View of Hills  (0) 2013.01.31
회귀천 정사  (0) 2013.01.27
황태자비 납치사건  (0) 2013.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