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영화-MOVIE

늑대소년

gowooni1 2012. 11. 18. 12:41

 

미국에 사는 순이 할머니한테 전화가 오는 것으로 영화 스토리가 전개된다. 전화를 끊은 그녀는 아들 부부 내외에게 잠깐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다소 심각해 보이는 순이 할머니의 태도에서 궁금증은 더해지지만 이건 이내 해결된다. 한국에 도착한 순이 할머니는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손녀딸과 강원도 산자락 자신의 별장으로 향하는데, 이것을 매입하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거의 팔려고 마음을 먹긴 했지만 스무살 적 자신의 소중한 추억이 서린 그 집을 한 번 더 눈에 담기 위해 순이는 지구 반바퀴를 돌아 다시 그 집 앞에 섰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47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건강이 안좋아 학교에도 다닐 수 없는 순이와 그 가족들은 요양차 강원도 산골 별장같은 집으로 이사를 온다. 주변에 이웃이라고는 두 집 밖에 없는 아주 외딴 산자락. 사업이 몰락한데다 충격으로 일찍 죽은 아버지 때문이 아니더라도, 천성적으로 건강이 안좋아서 순이는 늘 비관적이고 우울하고 시니컬한 감성의 소녀다. 일기장에는 온통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자괴감과 슬픔의 문구가 지배한다. 거기다 우아하고 고상하기까지 해서 산골짜기에 사는 사람들, 순박하긴 하지만 거칠고 세심하지 못한 사람들과 지내야 한다는 사실마저 짜증스럽고 답답하기만 하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집에서 조용한 나날을 보내던 순이와 가족들은 헛간에서 이상한 물체를 발견한다. 늑대처럼 잽싸긴 하지만 늑대의 형상은 아니다. 잔뜩 굶주려 있는지 먹을것을 탐내기에 마침 이웃집에서 삶아 온 감자로 유인해보니 지저분하고 야성적이긴 해도 영락없는 사람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말을 하지 못하는데 무책임한 경찰서와 면사무소에서는 단순히 버려진 전쟁고아일거라고 일축한다. 호적에도 없고, 말도 못하고, 자신이 비정상이라는 것도 자각하지 못하는 이 짐승같은 소년을 순이네 가족은 어찌해야할지 몰라 일단 데리고 있기로 한다. 이 모든 상황이 순이에게는 더욱 짜증스럽기만 하다. 안그래도 밥맛없어 죽겠는데 식사예절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소년 때문에 숫가락을 들 수 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짐승같은 소년은 말끔하게 씻기고 나서 보니 꽤나 잘 생겼다. 호감형이다. 게다가 하는 짓을 가만 살펴보면 멍멍이 같기도 하다. 순이 자신과 연배도 비슷해 보인다. 집에서만 지내느라 따분하기 그지없던 일상에 흥미거리가 생긴 셈이다. 순이는 점점 검정고시 책보다 애견훈련책을 보면서 소년을 어떻게 길들일지 공부한다. 초반에 피를 좀 봐야하긴 했지만 다행히 소년은 순이의 가르침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길들이면 길들일수록 소년은 개처럼 더욱 순이만 졸졸 따라다니며 의지한다. 길들인다는 것은 서로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야, 라는 어린왕자의 말이 생각나는 장면들의 연속이 따뜻하고 유머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던 중 난폭한 난봉꾼인 자칭 순이 약혼자가 이 소년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녀석이 맘에 들지 않아 동네 무뢰배들을 돈으로 사서 혼쭐을 내주려고 작심하고 오밤중 별장으로 찾아온다. 만약 소년이 자신만 맞아도 되는 상황이었다면 비밀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순이가 개입됨으로써, 이미 자신보다 더 중요한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한 소녀가 무뢰배들에 의해 위험에 처해짐으로써 소년의 본능이 발현된다. 갑자기 늑대로 변신한 소년은 장정 넷을 멀리멀리 날려보내고 겁에 잔뜩 질린 자칭 순이 약혼자에게마저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전쟁고아라서 마냥 순진하고 착한줄만 알았던 소년의 진짜 모습을 본 순이와 약혼자는 겁에 질린채 크게 당황한다.

 

 

순이는 늑대소년의 신변을 지켜주기 위하여 그날 밤의 사건을 모른척 잡아떼지만, 악질인 약혼자는 소년을 처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버렸다. 어째서 그런 소년이 세상에 존재하게 될 수 있었는지 원인규명을 하는 것에서부터 소년을 세상에서 영영 없애버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생각하는데 온 힘을 다 기울인다. 덕분에 늑대소년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경위가 밝혀진다. 원래 이 별장의 주인이었던 교수가, 전쟁 때 더욱 강하고 힘있는 전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늑대의 강한 유전인자를 사람과 결합시키는 실험을 비밀리에 했던 거다. 그리고 소년은 교수가 했던 실험의 결과물이었다.

 

 

군대에서는 이 비밀이 세상에 드러나면 절대 안되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사살하여 사건을 은폐하려하고, 죽은 교수의 동료교수는 이 살아있는 성공적인 실험체를 어떻게든 살려 보존하고 싶어한다. 순이는 당연히 늑대소년 편이지만 그녀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약혼자는 자신의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소년을 세상에서 영원히 없애버리고 싶어 죽겠다. 여러 사람의 입장이 팽팽하기 엮인 가운데 늑대소년은 헛간에 마련된 방에서 24시간 씨씨티브이의 감시를 받으며 순이가 내준 숙제만 하며 하루종일 얌전히, 순이만 기다리며 밥도 안먹고 있다. 늑대소년이 얌전하면 얌전할수록 소년을 죽이고 싶은 자신의 처지와 어긋나기만 하는지라, 약혼자는 결국 늑대소년을 죽이기위한 음모를 꾸민다.

 

 

전체적인 플롯만 보자면 아주 특별날 것은 없다. 영화를 살리는 건 배우들의 연기 가볍게 흘리는 대화에서 주는 웃음, 끝으로 갈수록 눈물나는 감동을 선사하는 스토리에 있다. 마지막에 너무도 인간적인 늑대소년의 한결같음과 그래서 더 잔잔히 밀려오는 안타까움이 감동을 주는 핵심이다. 인간과 인간이 마음으로 나눌 수 있는 따뜻한 감성적 교류가 이리 좋은 것이었나 생각하게 만든다. 모처럼 가슴 따뜻한 먹먹함을 오래오래 간직하며 잠들 수 있는,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도록 만드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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