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관심가는책200+

속도에서 깊이로

gowooni1 2013. 1. 7. 00:17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현대인들과 같은 생각을 했다.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어'. 기원전 500년과 21세기 사이에는 2500여년이란 간극이 있고, 요즘 아이들은 늘 버릇이 없었다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시대의 아이들은 최고로 버릇이 없는 것인지.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신세대는 언젠가 기성세대가 되고 어른이 되면 버릇은 좀 나아지므로.

 

우리가 요새 고대 그리스인들과 하는 또 하나의 비슷한 고민이란 '깊이 있는 삶의 부재' 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일상생활을 깊이 파고들면서 우리는 혼자 있으면서도 늘 군중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엄청 빠른 인터넷, 없으면 불편한 스마트폰은 실시간으로 세상의 소식을 업데이트 한다. 그런데 이 소식들이란 게 알면 유용하긴 하지만 사실 쓸모없는 것들이다. 그런 주변인들의 알지 않아도 되는 소식들에 신경을 쓰는 동안 우리는 우리 삶의 깊이를 파는 법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무슨 깊이없는 삶의 부재에 관한 고민이 있었겠느냐 하는 의문이 든다. 현재 사람들에게 있어 그들에게 인터넷 혹은 스마트폰의 출현에 버금가는 획기적 변화가 있었으니 바로 문자의 등장.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을 단 한글자도 문자로 남기지 않았는데 이유는 문자로 남기면 깊이가 없어지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리기 때문이었다. 40살 어린 그의 제자 플라톤이 기억에 근거하여 문자로 남기지 않았다면 소크라테스는 그냥 전설이 될 뻔했다.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기 천조가리에 적은 문서의 등장으로 그리스인들은 드디어 군중이 모인 곳에서 연설을 듣지 않고도 혼자만의 공간 속에서 글을 읽으며 같은 감동을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몇 천년이 지나 구텐베르크가 또 한번 인터넷 혹은 스마트폰에 버금가는 혁명을 일으켰으니 바로 인쇄술의 발명. 오직 손으로 제작하여 고가 사치품으로 일부 귀족들의 전유물이던 책은 인쇄술로 인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사상은 무지몽매한 대중에게도 접근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평생동안 읽어도 다 읽지 못할 책들에 둘러싸여 살게 되었고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만의 사상을 확립하기 위하여 고심하게 되었다.

 

이런 역사를 가만 돌이켜보면, 사실 깊이 없는 삶에 대한 걱정은 딱히 스마트폰이 등장한 오늘날 유난히 심각할 것도 없어 보인다. 물론 좀 정신없는 세상이 된 건 맞긴 맞지만, 좀 방관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사실 어느 시대를 살아도 자기 삶의 깊이를 파는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들은 누구보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보다 나은 세상과 삶을 향한 성찰을 잘 한다. 즉각적인 정보의 공급으로 인하여 내면 가득한 사상을 채울 필요가 없어보이는 요즘에도, 연설을 잘하는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와 같은 방식으로 연설을 한다. 스마트폰이 홀로 있는 사람에게도 군중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지속시킨다고 하지만 -에머슨의 말을 빌리자면- 진짜 위대한 사람은 군중 속에서도 홀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대 사람들이 깊이를 잃어버렸다고 걱정하며 이 책을 쓴 저자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그건 약간 기우일지도 모른단 말이다. 물론, 저자가 조사하고 고찰한 생각의 흔적을 쫓은 시간은 즐거웠음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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