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용의자 X의 헌신, 식스티나인, 사랑의 기초, 잠

gowooni1 2012. 11. 20. 22:12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로맨스 스릴러. 이웃에 사는 한 모녀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을 옆집 남자이자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이시가미가 숨겨준다. 수컷으로서의 매력은 없지만 은둔형 천재인 이시가미는 평소 옆집 여자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모녀가 살인죄로 감옥에 가는 걸 원치 않았다. 천재적인 두뇌를 써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고 완전범죄를 저지르지만, 우연한 기회로 개입한 이시가미의 옛 친구가 사건의 진짜 전말에 호기심을 갖고 추리하기 시작한다. 이시가미를 너무나 잘 알았던 이 친구 유가와는 그가 야스코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는 사실도 단박에 알아챌만큼 눈치 백단. 결국 유가와는 사건의 진범을 파악해버리고, 모든 것을 들켰다고 판단한 순간 이시가미는 경찰에 자수해버리고 마는데...과연 천재의 의도가 성공을 할 것인지? 야스코에 대한 이시가미의 순정 때문에 단순한 스릴러에서 로맨스 스릴러로 승격한 '용의자 X의 헌신'. 제목에서도 야스코에 대한 이시가미의 헌신이 물씬 풍긴다.

 

 

 

 

무라카미 류의 자전적 성장소설. 베트남전쟁과 비틀즈라는 아이콘으로 대표되던 69년대 말 일본을 배경으로 소설은 그려진다. 69년도에 열일곱살이 된 소년 겐은, 개성없고 획일화된 아이들을 만드는 일본식 체제에 삐딱한 시선을 가진 반항아. 매사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이 하기 싫은 것은 절대 하지 않으려 하지만, 이것 저것 잡기에 능해 동급생들로부터 제법 지지도 받는다.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말도 안되는 혁명을 불러일으킨답시고 학교에 난장판을 쳤다가 퇴학당할 뻔하고, 재미없는 학교생활에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축제를 열어 많은 여자아이들의 환심을 사지만 반대로 주변 남자들의 공공의 적이 되는 겐. 작가의 모습을 그렸음직한 겐의 학교생활은 무척 유쾌해서, 만약 이게 작가의 열일곱살 모습이라면 지금의 무라카미 류라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쩐지 취미가 없이 하는 일이 전부 돈되는 일이라는 작가의 말이 좀 더 설득력있게 다가오게 만드는 소설이다.

 

 

 

 

알랭 드 보통이 모처럼 쓴 '사랑에 관한 주제를 다룬' 소설. 그렇지만 연애 소설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서로에게 실망감과 배신감을 안겨주다가 나중엔 더 깊은 사랑으로 단단하게 맺어져 영원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다, 는 내용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그 이후의 이야기다.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한 한 부부의 이야기. 이미 아이도 낳고 한참 키우면서 살아가는 영국 중산층 부부의 그러저러하게 흘러가는 일상사.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아 서글프지만 이제와서 무언가 감정적인 충만을 위하여 애정의 모험을 감내하기엔 너무나 멀리 와버린 마흔 즈음의 중년 부부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와 뜨거운 사랑에 빠져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느끼며 삶에 대한 희망으로 살고프지만 현실은 일년에 여섯번 밖에 하지 않는 섹스와, 아내의 냉랭한 태도다. 결국 벤은 회사에서 잠깐 일했던 스물 다섯살 여자와 불타는 하룻밤을 보내는데, 외도는 외도일 뿐. 다음날 뜨거운 죄책감과 후회를 느끼면서 더욱 아내에게 잘해야겠다 생각하고, 앞으로 남은 인생이 뜻뜨미지근할지라도 그럭저럭 버텨보겠다는 마음으로 또 하루를 살아가는 벤의 이야기.

 

 

 

 

마흔이 되기 전에 대작을 쓰겠답시고 모든걸 정리한 채 로마로 날아가 상실의 시대를 비롯한 여러 장편을 쓴 하루키, 까지의 이야기는 하루키를 제법 아는 사람이라면 다들 알 것이다. 이건 그 이후의 하루키가 쓴 작품이다. 상당한 분량의 장편을 짧은 기간에 토해냈으니 더 이상 쓸게 없어, 라는 슬럼프에 빠지게 된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세간으로부터 많은 인정을 받고 성공을 거둔 후의 하루키가 한동안 내면의 텅빈 공간을 느끼며 아무것도 쓸 수 없다가 조금씩 채워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잠'은 그 첫 작품이었단다. 중편이라고 하긴 짧고 단편이라고 하기엔 약간 긴 이 소설은 일인칭 시선으로 내면의식의 흐름과 외부 시간변화에 대한 동선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묘사한, 엄청나게 하루키적 냄새가 풍기는 단편이다. 작가가 남자인데 억지로 여자의 시선을 따낸 것은 아닌가 싶어 조금의 위화감이 들기는 하지만, 작가 본인이 마음에 든다고 하니 이미 하루키의 영향력에 군말없는 독자라면 그냥 눈 조금 감고 읽어주는 것도 팬으로서의 아량이라면 아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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