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알바로 일하며 근근히 살아가던 데이비드 아미티지에게 드디어 세상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췄다. 14년의 오랜 무명 극작가에서 단숨에 할리웃 최고로 잘나가는 대작가님이 된 데이비드. 그가 만든 [셀링 유]는 곧장 시트콤 제작으로 결정되었고, 연일 최고의 반응을 보이며 후속작 제작이 결정되었다. 성공을 하니 그에게 붙는 사람도 달라졌다. 방송국에서 잘 나가는 편집장 샐리는 그를 유혹했고, 입은 좀 걸지만 투자만큼은 확실하게 하는 바비 바라가 자신에게 돈을 맡기라고 끈질기게 요구했다. 데이비드는 결국 텔레마케터로 일하며 가정을 꾸린 아내 루시와 그의 딸 케이틀린을 버리고 프린스턴 졸업한 야망있고 아름다운 샐리를 선택했다. 상당한 돈을 투자하기로 결심한 바비 바라는 얼마후 그의 고객 중 한 명인 필립 플렉이 데이비드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전해왔다.
필립 플렉은 세계 도처에 으리으리한 저택과 섬과 별장을 보유한 세계 8위의 재력가로, 즉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그가 이제 막 성공의 궤도에 진입한 햇병아리 데이비드를 보고싶어 하는 것은 영광이었다. 플렉은 데이비드의 대본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공동으로 영화를 제작하자고 제안했고, 데이비드는 농락을 당하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채 응했다. 플렉의 섬에서 그의 아름다운 아내 미사와 에밀리 디킨슨의 시로 플라토닉한 사랑을 즐기며 불발의 밤을 보낸 데이비드는 케이틀린을 만나기 위해 급히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딸아이와 시간을 보냈고,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와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샐리도 회사에서 입지를 더욱 단단하게 굳히는 중이었고 데이비드도 필립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액수를 약속받았으니 그야말로 이 커플의 최고 전성기였다.
갑자기 이뤄진 성공은 사상누각이었다. 게다가 시간을 들이지 않고 대중과 여론의 호감으로만 급속히 이룬 데이비드의 성공은 더욱 그랬다. 악질 기자 한 명이 데이비드는 최고의 표절꾼이라는 기사를 꾸준히 내어 그가 실력없이 짜깁기만 하는 최악의 작가라고 난도질을 했다. 물론 데이비드는 실력이 있었고, 표절 수준은 대사 한 두줄로 경미하기 그지 없었지만 한 번 매장당하는 것으로 결정된 작가 한 명 죽이기는 쉬운 일이었다. 데이비드는 급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셀링 유] 후속작 제작은 물건너 갔고, 오히려 방송사에서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지경이었다. 다른 영화사와 계약한 시나리오건도 파토났고 어마어마한 액수를 제시받은 필립 플렉으로부터도 거절당했다. 처음부터 자신의 위치에 대한 액세서리로 데이비드를 택한 샐리는 그가 추락하자 가차없이 그를 버렸다. 루시로부터는 예전과 다름없는 양육비가 요구되면서도 딸아이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오직 그를 버리지 않은 사람은 그의 오랜 무명기간동안 에이전시를 해준 앨리슨 뿐이었다.
앨리슨은 집에서 쫓겨난 데이비드에게 LA 근교 주말타운에 있는 친구 집을 제공하며 당분간 은거하라고 했다. 갈 곳도 없는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사실 없었다. 중요한 건 앞으로 돈을 갚지 않으면 언젠가 구속될 것이고, 케이틀린에게 들어갈 양육비는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예전이라면 생각지도 못했을 싸구려 삼류 시나리오 소설 각색까지 했지만, 이마저도 언론은 기가 막히게 포착하고 그의 말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데이비드의 작가 인생은 완전히 끝난 것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하고 포르쉐와 노트북을 팔아 몇 개월치 양육비를 루시에게 보냈다. 그러고는 동네 작은 서점에 취직해 시급 7달러를 받고 일주일에 200달러만 쓰는 히피적 생활을 시작했다.
사실 데이비드의 몰락은 좀 심한 데가 있었다. 누군가 배후에서 조작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럴 수 없다 싶을만큼 철저하고 고의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재능은 없지만 돈만 많은' 필립 플렉이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는 바로 데이비드가 플렉의 섬에서 머문 일주일간 각색했던 바로 그 시나리오였다. 작가로서의 삶을 끝내고 투기마저 잃은 채 세상에서 조용히 잊혀져갈 뻔하던 데이비드의 눈에 빛이 돌았다. 바닥에서 바닥으로, 그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밑으로 떨어진 데이비드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밥그릇을 되찾고, 자신의 인생을 되찾아가는지가 재밌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주인공들을 최고에서 최저로 이끄는 더글라스 케네디식 반전이 어김없이 펼쳐지며, 역시 작가의 재능에 탄복하고 마는 멋진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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