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파리 5구의 여인

gowooni1 2012. 12. 2. 10:34

 

 

 

더글라스 케네디도 몇 번 읽으니 좀 알겠다 싶다. 비슷한 성격, 비슷한 상황에 놓이는 주인공. '파리 5구의 여인'의 주인공은 '템테이션'의 주인공과 지나치게 모든 게 비슷하다.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로 일방적 이혼을 당하게 된 중년의 남자. 모든 재산을 잃는 것은 물론 하나뿐인 소중한 딸과 대화를 할 권리도 박탈당한 채 집에서 쫓겨난다. '파리 5구의 여인'에서 주인공은 맨 밑바닥에서 시작한다. 좀 더 있다가는 어마어마한 소송을 당할것 같아 급하게 파리로 도망치듯 날아온 미국 남자 해리. 수중에 남은 돈으로는 싸구려 호텔에서 저급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한 두 달 버틸수 있을까 말까 한 정도다. 이제 남은 거라곤 소설을 쓰는 것 밖에 남지 않은 그는, 터키 이민자들이 사는 가장 험악하고 지저분한 거리 파라디스의 싸구려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한다.

 

비록 삼류 대학이었지만 종신교수로 안정적인 삶을 살던 해리의 인생은 이제 불법 취업을 하지 않으면 하루도 벌어먹고 살기 힘든 상태. 늘 가던 인터넷카페의 주인에게서 정체를 알수 없는 건물의 야간경비 일을 중개 받게 되었지만, 일단 돈을 벌게 되니 마음은 놓인다. 저급하고 폭력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다보니 이상하고 엉뚱한 일에 자꾸 휘말리고 말아 해리 주변엔 적만 점점 늘어간다. 물론 적이라고 해도 생활상 부딪히는 정도니 가끔 못 견디겠는 적의일 뿐 살의까지는 아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진절머리를 느끼던 그는 친구의 추천을 받아 6구 고급 주택가에 있는 살롱에 입장하여 제법 사귈만한 사람들을 만나보려 하지만, 거기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너무도 귀하신 분들이라 해리와 사귀려 들지 않는다. 외로움을 느끼며 발코니에 나가 바람을 쐬는데 그런 그에게 매력적인 여인이 다가온다.

 

매력적인 마지트랑 공식적인 연인관계가 된 해리. 꽉 막혔던 삶에 그나마 활력이 생겼다. 사흘에 한번씩 세시간 정도밖에 못 만나지만 이제 해리의 인생은 마지트와 함께 하는 시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마지트와 만난 이후로 해리 주변에서 사람이 하나 둘 씩 죽어나간다. 그것도 해리를 한 번이라도 괴롭혔거나 고질적으로 못되게 굴었던 사람들이고 방법도 매우 처참하다. 그러다가 결국엔 해리 옆 방에 살던 못된 터키 이민자 오마르도 죽어버렸는데 이를 첫번째로 발견한 사람이 해리라서 그는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이 오마르와 해리가 화장실 문제로 종종 싸웠다고 진술해버리자 그는 더욱 확고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이제 더 밑바닥으로 내려갈 것도 없는 인생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타지에서 외국인을 죽였다는 이유로 철창신세가 되어버리게 되었다. 형사는 해리에게 그 시간 알리바이를 증언하거나 증언해줄 사람을 대라고 하고, 몰래 하는 야간경비 일을 차마 말할 수 없어서 마지트가 거짓말을 해주길 바라며 그녀의 이름과 주소를 댄다.

 

이제 여기서부터 기존 더글라스 케네디의 이야기와 다른 본격적 허구와 환상이 시작. 형사는 마지트가 이미 30년 전에 죽어버린 여자라는 정보를 들고 해리에게 온다. 해리는 이제 혼란스럽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자기와 살을 맞부딪히며 사랑을 나눴던 오십줄 후반의 매력적인 중년 여자 마지트는, 형사는 가지고 온 정보에 의해 삼십년 전 서른살의 나이로 자살한 여인으로 변해버렸다. 해리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마지트의 아파트로 가보니 정말로 마지트는 온데간데 없고 마지트의 방은 온통 거미줄과 쥐똥으로 범벅된 영락없는 폐허다. 집주인은 마지트가 죽기 전에 몇 십 년간의 집세를 지불하고 죽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세를 놓지 않긴 하지만, 이 집은 벌써 삼십년 가까이 비어 있다고 설명한다. 해리는 더더욱 혼란스럽다. 그러는 사이 오마르를 죽인 사람이 해리를 괴롭히던 또 다른 사람 중 하나라는 게 밝혀지고 그는 혐의에서 풀려난다.

 

스토리는 이제 환상 로맨스 스릴러로 치닫는다. 해리는 마지트의 정체를 알고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두렵다. 이제껏 막혀있던 해리 인생이 최근에나마 풀린 것도 조금씩 이해가 간다. 풀린 방향이 끔찍한 방법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해리에게는 늘 득이 되었고, 그건 해리가 그 사람들이 싫다는 것을 마지트에게 말하고 난 다음이었던 것이다. 마지트의 손길은 파리를 떠나 고국땅 미국에까지 이른다. 해리를 해고하고 아내까지 빼앗았던 남자 롭슨은 대학교 학장이면서 어마어마한 포르노 동영상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이 폭로되었다. 포르노 산업에 종사했다는 것까지 밝혀지만서 롭슨은 곧장 해고와 동시에 체포되었다. 사흘에 한 번 마지트를 만날 시간이 되자 찾아간 그녀의 아파트에서 마지트는 해리에게 말한다. 모든 게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었는 데 뭐가 불만이지? 롭슨은 내일쯤 감방 안에서 목을 매 자살을 할 거고, 당신은 지금처럼 사흘에 한 번씩만 나를 만나주면 돼.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혼을 팔고 현세의 안락을 얻은 해리. 과연 그는 마지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문자중독-Reading > 문학*문사철30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일즈 맨의 죽음  (0) 2012.12.23
사랑의 기초-연인들  (0) 2012.12.17
삼성 컨스피러시  (0) 2012.11.29
용의자 X의 헌신, 식스티나인, 사랑의 기초, 잠  (0) 2012.11.20
최후의 경전  (0) 2012.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