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영화-MOVIE

광해, 왕이 된 남자

gowooni1 2012. 9. 13. 22:55

 

 

무능하기 그지없던 선조 덕에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었고, 조선 초기 태평성대하던 시절 450만에 육박하던 조선 인구는 왜란 후 150만이 채 되지 않는 빈국으로 전락했다. 황폐화 된 땅과 줄어든 인구 때문에 백성은 힘들어 죽겠는데 있는 자들은 권력을 유지하려고 여전히 부정부패를 일삼고, 그 와중에 광해군은 조선 한 번 제대로 살려보려고 기를 쓴다. 그러나 애초에 정권이 미약했다. 조정에 군림하는 대신들은 전부 왜란 때 은혜를 베푼 명에 사대를 해야만 조선이 산다고 하고, 그러기엔 후금이 너무 강하게 성장하여 적으로 두기에는 곤란해졌다. 광해군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정치와 호시탐탐 독살을 노리는 정적들 때문에 점점 예민해지고 난폭해진다.

 

 

왕은 자신의 신경을 제대로 다스리기 위해 도승지 허균을 불러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데려오라 명한다. 우연찮게도 시장바닥에서 찾아낸 천민 하선은 놀랍도록 용안을 빼닮았다. 걸쭉한 만담으로 양반들의 술자리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직업인 하선은 금방 왕의 흉내도 따라하고, 덕분에 왕은 하선을 대리로 앉히고 야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정말로 왕이 쓰러져버린다. 독살의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아직 죽지 않은 왕을 대신하여 하선이 15일간의 왕 노릇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하선은 처음엔 도승지의 말에 따라 그냥 왕의 흉내만 내며 자리를 지킨다. 천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만저만 신나고 좋은 게 아니다. 최고급 음식을 먹고 최고급 옷을 입고 최고로 예쁜 여인들만 본다. 용변을 볼때 모든 궁녀들이 보는 가운데서 일을 해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고역이긴 하지만. 그러다 궁 내에서 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중전. 왕과 몸을 섞은 중전이나 후궁들은 용안에 차이가 있음을 알아챌 수 있으니 절대 마주치지 말라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많은 않다.

 

 

처음에 멋모르고 도승지가 시키는대로만 하던 하선은 점점 조정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안다. 자기가 봤을 때는 대동법이 참으로 이상적인 제도인데 모든 대신들은 반대를 하고, 중전의 오라비는 아무 잘못도 없는 충신인데 대역죄를 저지른 반역자로 낙인찍혀 고통받고 있다. 무식의 힘은 여기에서 발휘된다. 하선은 자신의 독단으로 무조건 대동법을 시행하라, 중전의 오라비를 풀어주라 명하여 조정의 대신들은 물론 왕의 절대적 충신인 도승지 허균까지 경악하게 만든다.

 

 

점점 궐내에서는 왕이 변했다는 소문에서부터 사실 지금 왕은 가짜고 진짜 왕이 따로 있다는 진실까지 떠돈다. 한편 궐 밖에서 몸을 추스린 진짜 왕 광해는 천천히 궁으로 돌아올 채비를 하는데 그 전에 도승지에게 하선을 죽이라고 명한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천민 주제에 임금의 자리에 앉은 그를 살려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하선이 치른 지난 15일의 행적에 진심으로 마음을 빼앗겨 버린건 도승지 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오라비를 목숨걸고 살려준 중전도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고지식하기 그지 없는 호위부사 도부장의 마음까지도 진짜 왕으로서 확실히 사로잡아 버렸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왕이 돌아오기 전에 어서 몸을 피하라고 진심으로 하선에게 말한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광해군 8년에 15일간 일지가 없는 시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탄생했다. 실리주의 외교를 펼치기 위해 애를 쓴 광해군과 그의 충신 허균의 기반없는 세력 속 고된 몸부림이 절절히 보이면서도, 하선이라는 천민을 등장시켜 저속함만이 줄 수 있는 유머를 가미해 코믹까지 섞어 넣은게 묘미다.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시대적 슬픔의 비장함이 광해군을 더욱 비운의 왕으로 그려낸다. 실제로 1년 후 허균은 적들의 음모에 못이겨 참수당하고 그 후 얼마지나지 않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몰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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