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솔로몬 왕의 고뇌

gowooni1 2012. 8. 19. 13:04

 

 

 

 

바지의 제왕 솔로몬은 한 험악하게 생긴 택시 운전기사를 고용한다. 개인 운전수로 고용한 것은 아니고, 그가 운영하는 자선회의 봉사자로. 젊은 시절 했던 기성복 바지 사업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쥔 솔로몬은 좀 특이한 신사다. 내일 모레면 86살이 되는데에도 마치 앞으로 50년은 더 살 것처럼 행동한다. 늘 빳빳하게 맞춘 최고급 양복을 사 입고 향후 20년은 끄떡없을 재료로 치아를 손 본다. 더 이상 일 할 필요가 없는 그는 아침마다 출근해야 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풀 정장을 한채 집에 머물고 유일한 취미인 우표수집을 하면서 소일한다. 일종의 사명감으로 운영하는 고민상담 콜센터는 그에게 왕으로서의 자부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다. 그에게 있어 고민거리를 상담하는 많은 사람들은 불쌍한 중생이자 구제해주어야 할 자신의 백성이고 콜센터는 신문고이며 자신은 한없이 높은 곳에서 베풀 특권을 가진 진정한 왕인 것이다. 그렇게 남들의 불행을 들으며 그는 자신의 불행을 잊고 있는지도 몰랐다.

 

젊은이는 하나의 임무를 부여받는다. 내일 모레 65살이 되는 마드무아젤 코라를 보살필 것. 마드무아젤 코라의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주인공은 자신이 왜 왕의 눈에 들었고 고용이 되었는지 알게 된다. 그의 범죄자상의 험악한 얼굴은 젊은 시절 마드무아젤 코라가 사랑했던 연인 자노 라팽과 너무나 흡사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코라는 젊었던 한 때 반짝 잘나가던 가수였지만 전쟁이 터지고 나치 협력자였던 자노와 사랑에 빠져 가수 활동을 그만둬 버렸다. 나중에 다시 가수로 복귀하고자 했지만 나치 협력자를 사랑했다는 이유말고도 세상은 이미 코라를 위한 무대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에디트 피아프 같은 대중의 영속적 사랑을 받을 만한 가수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코라는 자신이 시대를 잘못 만나 이렇게 몰락했다고 굳건히 믿는, 늙어버린 얼굴과 다르게 아직도 몸매와 자태에서는 암컷의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여자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노는 코라가 솔로몬이 대주는 연금으로 생활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때문에 그가 그녀를 위해 연금을 대주고 자신을 고용해 젊은 시절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두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베풀면서 자신의 특권을 음미하는 왕의 넓은 오지랖 때문이라고만 생각해두기로 한다. 그런데 생긴것과 다르게 이 자노 라팽 역시 오지랖이 넓어서, 자신이 코라를 진정으로 사랑해주어야만 이 늙은 여자를 구원하고 더 나아가 인류를 구원한다고 생각해버린다. 그러니까 결코 코라를 만나는 것이 늙은 사람을 위로해주기 위한 동정심에서가 아니라고 그녀가 생각해야 한다고 굳건히 믿는다. 코라를 사랑하는 것은 전 인류애적 사랑이다, 그녀는 자신이 동정심을 받을만큼 불쌍한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해줘야 한다, 이런 생각은 그를 자꾸 마드무아젤 코라를 방문하게 하고, 젊은이들이 드나드는 클럽에 데리고 가게하고, 결국 할머니뻘 여자와 자게 만든다.

 

사실 솔로몬과 코라 사이에는 애증이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젊은 시절 코라에게 푹 빠졌던 솔로몬은 그녀에게 애정 공세를 펼쳤지만, 스무살이나 연상인 그를 사랑하기에 코라는 너무 매력적이었고 인기도 많았으며 젊었다. 그녀는 그의 애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나치 협력자와 사랑에 빠져버렸고, 마침 그 당시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유태인인 솔로몬은 샹젤리제 거리의 한 지하 방에서 사년동안 숨어지내야 했는데 그 당시 유태인을 고발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풍조를 고려하면, 나치 협력자를 사랑한 코라는 솔로몬의 거처를 애인에게 말하지 않아 그를 구해냈다. 훗날 나치 전범들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질때 상황은 역전되어 솔로몬은 그녀가 자신을 고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코라를 구해냈다. 이런 상황들은 서로가 서로를 통해 구원 받았다는 감사의 마음을 지니게 할 수도 있었지만 상대방에게 사랑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겐 반대로 적용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구해줬으니 상대방이 내게 와서 사죄를 하고 다시 사랑을 구해야 한다고 철썩같이 믿게 만든 것이다. 그런 꽁한 아집에 사로잡혀 솔로몬와 코라는 장장 40년이란 세월을 흘려보냈고, 솔로몬은 86살이, 코라는 66살이 되었다.

 

어릴 적에는 그렇게 많아 보이던 스무살의 나이차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서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을 코라도 느끼고 있었지만, 아직도 왕이 자신을 좋아하기 때문에 연금을 대주고 자노 라팽을 구해내 젊은 시절의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직도 도도하여 왕이 먼저 잘못을 빌고 자신에게 구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왕 역시 자신은 그녀를 구원해주었고 돈을 대주어 화장실 마담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살게 해주었으니 이제 그녀가 자신에게 사랑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또 다시 자노 라팽의 역할이 부각된다. 그는 왕과 가수가 예전의 관계를 회복하여 남은 여생을 쓸데없는 신경전 없이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노는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자원봉사자였다. 사랑의 큐피드가 되어 왕과 가수 사이의 40년 벽을 허물린다. 왕은 그녀에게 꽃다발을 선사하며 프로포즈를 하고, 가수는 왕의 곁으로 돌아온다. 아직도 50년은 끄덕없이 살 것 같은 86살의 왕은 86년만에 처음으로 결혼하여 자신의 여왕과 니스로 가 행복한 삶을 맞이한다.

 

이렇게 노년의 행복을 멋지게 그린 로맹 가리가 왜 이 작품을 쓰고 일 년 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지, 왜 다시 에밀 아자르로 돌아와 이 작품을 써냈는지 의문이 좀 들긴 하는데 아내가 죽고 난지 1년 후 자살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역시 아무래도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인간적 존재였나보다 라는 다소 성급한 일반화의 어설픈 추측이 통한다. 로맹 가리보다 에밀 아자르로서의 문체가 일인칭 시점으로 훨씬 가볍고 잘 읽히는 걸 볼 때 에밀 아자르로 돌아와 이 작품을 써낸 것도 탁월한 선택이다.

 

'문자중독-Reading > 문학*문사철30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토익 만점 수기  (0) 2012.09.02
대장경  (0) 2012.08.26
사랑하는 기술 : 앙드레 모루아  (0) 2012.08.03
한여름 밤의 꿈  (0) 2012.07.29
소수의 고독  (0) 2012.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