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대장경

gowooni1 2012. 8. 26. 14:00

 

 

고려 무신 정권 시절 발발한 몽고와의 전쟁. 최씨 정권은 왕을 강화도로 대피시키고 몽고군에게 유린당하는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을 왕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특권을 지켜나간다. 답답한 고종은 직접 육지로 나가보고 싶어하나 대신들의 반대로 그것도 맘대로 되지 않는다. 무신들도 무신들 나름대로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이유인 즉, 고려 초기 거란의 침입때부터 나라를 수호하는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대장경이 불에 타버렸기 때문이다.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던 부인사가 전부 불타 없어지고 거기 소속 승려들도 모두 타죽은 상황에서 그걸 보고하자니 자신들의 목숨이 날아갈 것 같고 안하자니 언젠가 들키게 될 일이다.

 

결국 최우는 머리를 써서 그 사건을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과 같았다고 보고하고 이 사건을 역이용한다. 왕에게 잃을대로 잃은 신임을 회복하고 더 바랄수 없는 백성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더 많은 대장경을 조판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짜낸 것이다. 이 제안을 받은 왕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흔쾌히 허락하지만 이 대국적 불사를 수행해야 하는 대승려 수기대사는 분기탱천한다. 안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 백성들의 사정은 아랑곳도 않고 특권을 지키기 위해 머리만 짜대는 최씨정권의 작당에 치가 떨린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역사는 어떻게든 흐를대로 흐르게 되고, 자기 혼자 반대한다고 해서 대장경조판 사업이 멈출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기가 맡지 않으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비전문가들이 조악한 대장경을 만들어 백성들의 노고를 엉망으로 만들것이므로 그것도 아니될 일이다. 결국 수기대사는 팔만 삼천여개에 이를 어마어마한 대장경 조판 사업을 책임지고 완수하기로 한다.

 

이제 전국 각지에서 필생과 각수를 담당할 사람들을 모아야 했다. 이 사람들은 몇 년의 훈련기간을 거친 다음에 유려한 글씨를 쓰는 사람은 필생으로, 조금 덜 떨어지는 사람은 각수로 업무를 나눌 것이었다. 수기대사는 전국에서 자원하는 사람들을 잘 골라 받는 와중 조금 특이한 사람을 한 명 만나게 된다. 평생 목수일로 먹고 살았던 근필이라는 남자였다. 그는 자신이 혼자서 대장경을 보관할 사원을 짓겠다고 자원한 사람이다. 그의 범상치 않은 포부와 눈빛을 보아하니 사원 짓는 것이 그리 급한 일은 아니어도 반드시 믿고 맡겨야 할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건 사실이었다. 바로 근필의 할아버지가 예전 대장경이 보관되어있던 부인사를 지은 총 책임 목수였고, 그 밑에서 평생을 일하며 더 배울것 없이 목수로 살아왔던 수제자가 바로 근필이었던 것이다.

 

소설은 대몽 전쟁이 다 끝나는 시점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팔만대장경 조판 작업이 완료되는 시점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매듭의 끈은 근필에게 있다. 자신의 목숨을 다 바쳐가며 혼신의 열정을 다해 지은 그 사원에 대장경의 첫 판이 들어서는 순간, 그 순간을 겨우 두 눈에 담고 마음 편히 세상을 뜨는 근필의 마지막에서 끝난다. 하찮은 천민의 위대하고 고결한 장인정신을 클로즈업하면서 끝낸 걸 보면, 머릿말에서 자신의 소설작업이 마치 근필처럼 신들린 작업과 같았다고 말하는 작가만 봐도 조정래의 글쓰기에 대한 장인정신이 젊었을적부터 얼마나 투철했는지 알 수 있어 작은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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