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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gowooni1 2012. 8. 10. 23:45

 

 

 

 

이 책, 생각외로 재밌다. 제1회 일본 감동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도, 뭔가 진부하게 절박해보이는 지극히 여성 독자 타겟용 제목도 별로 와닿진 않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논픽션인데 픽션같은 저자의 1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죽기로 결심했다는 위기의 도입부로 시작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긴자의 호스티스, 누드 모델, 라스베가스의 카지노까지 사람들 구미에 당길만한 재료가 한데 모여 적절히 버무려졌다.

 

여자 주인공은 뚱보에 외톨이에 남친없고 매력 제로, 정직원도 아닌 파견사원으로 월세를 간신히 내고 나면 밀린 공과금에 가끔 수도나 전기가 끊기는 생활을 하고 있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 스물 아홉의 생일, 홀로 조각케익을 사들고 어두컴컴한 방안에 앉아 happy birthday to me를 외치다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운다.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될지 그녀 자신도 몰랐던 거다. 이십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녀는 제법 괜찮은 일류 대학을 나왔고 도쿄대생 남자친구와 졸업후 결혼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은행에 정직원으로 취직했지만 일이 힘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덜컥 그만둘만큼 배짱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이별을 고하고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다시 정직원으로 근무를 해보려고 했지만 일은 뜻대로 되지 않고 4년이 넘도록 파견사원으로 이회사 저회사 전전하다가 살도 급격히 이십킬로그램이 찌면서 완벽한 찐따로 변신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부엌에 가서 식칼을 가져다 손목에 댔다.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이 삶의 전부인 지금 스물 아홉의 자기 모습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손목에 칼을 대니, 잠깐 눈 딱 감고 스윽 하고 그으면 되는 것인데에도 도저히 겁이나 그럴수가 없었다. 죽는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화려한 라스베거스가 나왔고, 그녀는 앞으로 딱 1년의 시간을 자신에게 주기로 한다. 1년만 열심히 미친듯 살아보자. 그리고 1년 후 저 라스베가스로 날아가 원없이 갬블을 하고 딱 서른이 되는 생일에 미련없이 세상을 떠나자.

 

그렇게 그녀의 고군분투 1년이 시작된다. 당장 라스베가스로 가려면 필요한 건 자금. 가서 최고급 호텔에 머물 돈과 갬블을 할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러려면 돈이 턱없이 부족하고,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찾아보니 호스티스가 제격이었다. 그래, 호스티스라면 금방 돈을 모을 수 있을지도 몰라. 무서운 집념으로 실행에 옮겨 긴자의 클럽을 돌며 전전하니 마담들의 표정들은 하나같이 니가 감히?였다. 그녀는 긴자의 호스티스로 일하기에는 너무나 못생기고 뚱뚱했던 거다. 그러다 운이 좋아 어느 중급 클럽에서, 정식 호스티스 급여보다 적게 받는다는 조건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사람좋아보이는 마담은 그녀에게 말한다. 네가 거기서 20킬로그램이 빠지면 정식 급여를 주도록 할게.

 

아마리는 거기서 세상을 배운다. 사람을 대하는 법, 세상이 돌아가는 법, 남자를 대하고 매력적인 리액션을 취하는 법 등등. 정작 본인의 수준은 낮지만 계속 보고 듣고 접하는 게 있다보니 당연히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진다. 처음에 적대를 하던 다른 호스티스들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열심히 하는 그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외톨이었던 아마리에게 드디어 마음 놓고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동료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마음을 여는 것도 호사였다. 아마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이고 그 안에 돈을 더 많이 모아야 했으므로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이 있다면 돈벌이에 집중해야 했다. 그런 그녀가 구한 또 다른 고수익 알바는 미술생도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누드 모델이었다. 누드 모델이라는 것이 의외로 날씬한 사람보다 표현해야 하는 육감이 많은 뚱뚱한 사람이 인기가 많았다. 그녀는 낮에는 파견사원으로, 밤에는 긴자의 호스티스로, 주말에는 아뜰리에의 누드모델로 정신없는 삶을 산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영어회화와 블랙잭 공부를 틈틈이 한다. 그녀의 최종 목표는 지상 최대의 욕망이 분출되는 곳 라스베거스에서 인생을 건 갬블을 즐기다 장렬히 전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영어회화도 기본적인 건 되어야 했고, 갬블의 노하우도 마스터 해야 했다. 그녀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여 확률 게임을 즐기는 블랙잭의 카운터가 되어 볼 것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마음 맞는 친구 두명과 함께 아마리는 실전을 대비하여 연습을 하면서 점점 다가오는 자신만의 디데이를 맞이했다.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은 1년 후 죽기로 결심을 했는데, 죽지 않고 이 책을 썼고, 그래서 이렇게 출판이 되고 일본 감동대상 수상작까지 되었다는 의미니까, 결국 그녀는 죽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독자는 그런 뻔한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놓을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떻게 시간을 보냈고 어떤 심정의 변화를 거쳐 죽지 않기를 선택했느냐인 것이다. 4년 동안 아무런 생각없이 자신을 방치하며 살다가 1년만에 죽기살기로 몰아붙인 그 시간이 한 사람을 어떻게 완벽하게 변모시켰는지, 그런 스펙터클한 이야기를 독자는 알고 싶은 거다. 그리고 그 과정이 제법 감동적이다. 스물아홉 즈음이 되었거나 그 길을 건너거나 아직 건넜어도 자기 인생에 대한 결정적 디데이를 부여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향해 달려봐야겠다고 생각이 들게 만드는 감동 논픽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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