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천년의 금서

gowooni1 2012. 3. 25. 18:36

 

 

 

 

삼십대 중반 독신 여교수가 자살한 채 발견됐다. 그런데 이 여교수의 죽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여자는 도저히 자살할 이유가 없을만큼 안정된데다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자가 자살한 포즈도 타살의 기운이 흘러넘칠 정도로 부자연스럽다. 심증만 있을 뿐 부검 결과에도 타살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서 일단 여교수의 죽음은 자살로 종결되었다.

 

여교수의 자살을 의심하던 목반장은 영안실에서 영민하게 생긴 한 젊은이를 만나고 그와 함께 여교수의 타살 증거를 찾기 시작한다. 이정서는 핵융합 발전을 연구하는 국보급 인재로 그저께만 해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 만찬을 하고 온 귀한 박사님이자 죽은 여교수 미진이의 둘도 없는 대학교 친구이다. 그는 자신의 친구가 자살을 빙자한 타살을 당한 상태로 세상에 잊혀지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 직접 나서서 그녀 죽음의 실마리를 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한 결과 제법 신통성있는 가설이 나왔다. 미진이는 부검에서도 흔적이 남지 않을 독으로 전신마비를 당한 후에 노끈에 목졸려 죽었다는 가설이다.

 

이제 그녀가 타살을 당한 이유를 찾아야 했다. 정서는 미진의 노트북과 연구기록, 이메일을 살펴보면서 근거를 하나씩 추적해나간다. 그런데 추적하다보니 좀 이상하다. 최근 미진이 몰두한 주제는 자신의 전공인 물리학이 아니라 역사와 천체기록들이다. 그러고보니 미진에게는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절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특히 그 친구, 한은원과 최근까지 잦은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정서는 급하게 은원의 행방을 찾지만 그녀의 행방 역시 묘연하다. 미진이 타살당한 마당에 은원의 행방불명은 분명 위급한 상황을 의미했다.

 

목반장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은원의 행방을 추적하니, 그녀는 최근 중국 역사학자 시에허 교수를 만나러 성도대학교에 들렀다가 일본으로 출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서는 그녀를 찾아 직접 중국으로 가 시에허 교수를 만난다. 시에허 교수 역시 갑자기 사라진 은원에게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의 친구라고 하는 정서를 섭섭지 않게 대접한다. 정서는 은원의 행방불명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시에허 교수에게 긴장을 놓치지 않으며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얻으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에허가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그녀의 행방을 쫓으면서 정서가 알게 된 것은 은원이 여전히 한국의 기원을 찾기 위한 연구를 계속했다는 것, 한韓의 근거가 삼한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이라는 것, 그것을 확증할 근거를 찾기 위해 은원이 중국에 왔다는 것 등이다. 와중에 왕부라는 후한의 대학자를 알게 되고 그가 바로 모든 씨족의 근간을 밝혀주는 <씨성본결>의 저자란 걸 듣는다. 하지만 소수민족의 근본을 밝히는 씨성본결은 많은 소수민족이 모여 만든 중국이 통일을 이룰 때마다 분열의 싹이 되었고 덕분에 끊임없는 말살정책의 피해로 세상에서 사라진 금서였다. 은원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매 순간 그녀의 입장에서 판단하려 하며 정서는 이제 왕부의 고향인 임명으로 향한다. 거기서 은원이 얼마 전까지 왕부의 저작들을 찾아 돌아다녔다는 것을 알고 기운을 얻지만 진짜로 손에 넣은 건 하나 없다. 정서는 그녀가 남긴 메모를 따라 그만 북경으로 돌아온다.

 

정서는 우연히 왕부 연구소 소장인 펑웨이 박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에게 묻고 싶은게 산더미 같은데 그러기 위해선 그쪽에서도 자신에게 궁금한 뭔가가 있어야 할 것 같아 작전을 펼친다. 그는 펑웨이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소개하며, 왕부의 손자가 쓴 유한집을 자신이 소장하고 있으니 한 번 만나자고 한다. 왕부 연구의 대가답게 펑웨이 박사는 그물에 걸려 들고 정서에게 마음을 열어 많은 정보를 내주지만, 그게 사실 전부 유한집을 얻고자 하는 학자의 욕심 때문임을 정서가 모르지 않다.

 

그러나 펑웨이가 아무리 역사를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공산주의 하에선 관리의 연구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고,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삼대공정 조직원 일개 나부랑이에 불과했다. 그는 위에서 지시를 받고 이정서를 심포지엄의 발언자로 내세워 위기로 몰아붙이는 역할을 맡았다. 있지도 않은 유한집으로 자신에게 접근한 것일 거라는 위의 말을 들으니 정서가 더욱 괘씸하여 본때를 보여줄 작정이었다. 심포지엄에서 있지도 않은 유한집의 저자가 누구냐는 미리 짜놓은 질문을 그에게 던지고 삼대공정 본부장 이하 졸개들은 정서와 한국 역사학자를 사기치는 파렴치한으로 몰고가는데 그때 정서를 위기에서 건져주는 손길이 있으니 바로 진짜 유한집을 들고 나타난 한은원이었다.

 

대미 중의 대미는 한국에 돌아와 펼쳐진다. 은원은 현재 한국의 고대사가 식민시절 일본사학자들이 짜놓은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개탄하고 자신이 들고온 확고부동한 한국 고대국가존재의 증거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펼친다. 단순히 신화로만 치부되어온 단군세기가 지어진 이야기가 아닌 기록이라는 증거, 고조선이 세워진 후 백제 신라 고구려가 역사상 드러난 중간 이천년의 비어진 시간에 존재한 韓나라, 그 韓이 바로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의 근원이자 진정한 삼한의 근원임을 밝혀주는 역사상의 증거들 속에서 나이 지긋한 위원들은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우리나라 고대사의 진실을 밝혔다는 엄청난 감동 때문에 이야기의 발단이었던 여교수의 죽음이 결국 흐지부지 종결되고 말지만, 이미 기원전 1700년 경 화수목금토성의 오행집결을 관측한 천문학과 남해의 조수간만을 정확히 측정한 기술소유의 문명국이 바로 한국, 한민족의 근원이라는 사실에 어떤 문제가 더 대수로우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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