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영화-MOVIE

러브픽션

gowooni1 2012. 3. 8. 23:31

 

 

썩 잘 나가지만은 못한 소설가 구주월은 제목 하나 건져놓고 2년째 진도가 나가지 않는 슬럼프에 빠져 있다. 거기다 얼마전 애인에게도 차였다. 감자탕을 먹지 못한다는 이유로. 엎친데 덮친격 출판사 사장에게는 싸구려 삼류 가십 잡지에나 어울릴 소설을 연재해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권유를 들었다. 한국 문단에 큰 획을 그어보겠다는 야망을 버리지 못한 구주월은 자신의 평가절하에 충격을 받지만 일단 머리도 식힐 겸 사장과 함께 베를린으로 뜬다. 그리고 영화제가 끝난 뒤풀이 파티에서 그는 운명처럼 희진을 만난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구주월은 오매불망 희진만을 생각한다. 사랑의 열병에 빠져 얼간이가 된 그가 자신을 구하는 방법은 그녀를 자기 여자로 만드는 것. 유머러스한 연애편지와 로맨틱한 꽃바구니를 희진의 사무실로 보내고 눈과 목이 빠져라 그녀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린다. 상사병으로 병석에 드러눕기 일보직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희진으로부터의 전화가 걸려오고 둘은 처음으로 데이트를 한다.

 

 

첫 데이트 자리에서 주월은 희진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고 싶지만 계속 실수만 하는 것 같다. 고기를 먹으러 간 삼겹살 집에서 자신이 채식주의자라는 것을 들키고, 2차로 간 와인바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해준다며 저급한 농담만 한다. 이제 끝인가 하는 찰나에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사진 모델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하고 둘은 희진의 집으로 간다. 집이 상당히 외진 곳에 있다는 주월의 말에 희진은 전 남편의 취향이었다고 말한다. 희진이 이혼녀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지만 그게 희진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 못함은 누구보다 주월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이미 그는 희진의 포로가 되어 모든지 할 기세였고, 벌써 반라의 사진 모델이 되어버린 터였다.

 

 

우여곡절 끝에 둘은 드디어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한다. 사랑이 필요했고 뮤즈가 필요했던 그에게 희진은 삶의 활력소가 되어 주월의 삶을 채운다. 얼마만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둘이 처음으로 밤을 보내게 된 날, 그는 그녀가 겨드랑이 털을 자연스럽게 내버려둔 것을 보고 깜짝놀란다. 알래스카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희진은 태연스럽게 말한다. 알래스카에서는 다들 이래. 하지만 뼛속까지 철저하게 한국남자인 주월은 그런 그녀의 자연스러운 상태에 문화적 충격에 버금가는 쇼크를 받고 이상하게도 그런 이상한 점마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녀의 겨털은 예상치 못한 효과를 가져오는데, 메마른 우물같던 주월의 작가적 영감을 불러오는 마중물이 되어버렸다. 주월은 싸구려 삼류 가십 신문이긴 하지만 사장의 권유를 받아들여 액모부인이란 제목으로 소설 연재를 시작한다.

 

 

소설이 인기를 얻고 주월은 인터넷 팬카페를 통해 독자들의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읽는 재미를 쏠쏠히 느낀다. 그러던 중 한 팬과 만나게 되고 우연찮게 희진의 과거를 알게 된다. 사진학과를 나온 희진, 겨털을 깎지 않고 수영장에서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던 희진, 과제를 낼 때마다 남자 누드 사진을 제출했다던 희진, 한 번 모델이 된 남자들과는 어김없이 잠자리를 함께 했다던 희진, 그 수가 하도 많아서 남자들끼리 별명이 스쿨버스였다던 희진. 물론 이번에도 뼛속까지 전형적인 한국남자였던 주월은 그런 그녀의 과거를 듣고 마음이 싸해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희진은 전처럼 다정하게 주월을 대하지만 주월은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결정적으로 주월이 폭발한 건 희진이 활동하던 사진 동호회 전시회장에서였다. 희진이 출품한 작품 중 대표작은 주월이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찍은 누드 사진이었고, 그 대문짝만한 사진 밑에 다른 남자들의 누드 사진들이 나란히 놓여져 있던 것이다. 주월은 희진에게 저 남자들하고도 다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는 걸 어떻게 믿냐며 그녀를 몰아붙였고, 더 이상 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고 판단한 희진은 사실을 인정한다. 주월이 알고 있는 소문은 사실이 맞으며 가장 궁금해할 것을 알려주는 친절까지 베푼다. 그녀에게 있어 주월은 31번째 남자였다는 사실 말이다.

 

 

볼장 다 본 커플들이 다들 그렇듯 그와 그녀는 이제 최악으로 치단다. 그는 그녀에게 욕설을 하기 위해, 해명을 요구하기 위해, 답답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줄기차게 전화를 해대고 그녀는 그런 그를 견디지 못한다. 그러던 중 주월은 액모부인으로 인기를 얻어 영화화 제의와 함께 후속작 계약을 진행한다. 하지만 뮤즈였던 희진이 사라진 그는 더 이상 작품을 쓰는 것만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지 못한다. 희진에게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려 전화를 하지만 희진은 회사를 그만뒀다며, 알래스카로 돌아가 아버지와 함께 살 것이니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통고한다. 그렇게 둘은 헤어진다.

 

 

둘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희진은 알래스카에서 아버지의 식당을 도우며, 주월은 한국에서 여전히 소설을 쓰며. 희진의 생일 날, 그녀는 단행본으로 출간된 액모부인과 주월이 가사를 붙여 만든 뮤직비디오, 아니 UCC 동영상을 소포로 받는다. 희진의 겨드랑이 털을 찬양하는 가사의 뮤직비디오는 그녀의 마음을 녹이고 때에 맞춰 주월마저 알래스카로 찾아온다. 그렇게 둘은 다시 밀땅 게임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