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gowooni1 2011. 12. 4. 01:44

 

 

 

 

스물 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벌써 여러 분야의 학사 학위를 가지고 있고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외국어도 할 줄 아는 앙투안. 사람들은 그런 고차원적인 지적 능력을 가진 앙투안을 존경하였고 자신들과 다른 급으로 대우했다. 그런 타인들을 앙투안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자신을 불행과 우울증으로 몰아대는 것이 지성, 그것도 지칠 줄 모르고 더 많은 것이 투입되기를 원하는 지성 때문이었다. 지성이라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정신 질병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앙투안은 존경 비스무레한 것을 받고 있기는 했지만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고차원적 질병에 놀아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해 할 줄 아는 바보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바보가 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타고 나기를 왕성한 두뇌의 소유자로 태어난 앙투안이었으니 바보가 된다는 건 사람이 돼지나 나무가 되기를 원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존을 하는 것이었다. 앙투안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남 주지 못하는 버릇 덕분에 알코올 중독자가 되기로 결심한 앙투안이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술집이 아니라 도서관이었다. 기왕 알코올 중독자가 되리라 결심했다면 정말, 제대로 된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싶었다. 술의 종류나 역사에 대한 지식을 빡빡하게 머리에 채우고서야 앙투안은 드디어 술집으로 들어갈 용기를 냈다.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 그는 자신을 알코올의 세계로 인도해줄 스승을 찾기 위해 술집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마침 적절한 사람이 있었다. 탁자 위에 술이란 술을 종류별로 따라 놓고 마치 전투를 하듯 한 잔 한 잔 비워가는 그의 곁에 다가간 앙투안은 책에서 본 기억을 더듬어 술잔을 하나씩 가리켜가며 주종을 맞췄다. 그런 앙투안에게 알코올 중독자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판단한 고수는 기꺼이 그를 자신의 제자로 맞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둘 다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앙투안이 알코올이 중독 되도록 마실 수 있는 기본적 요건, 즉 술이 잘 받는 체질인가 하는 것이었다. 맥주 오백 씨씨를 시켜놓고 마치 신성한 세계로 들어가듯 경건하게 술을 마시던 앙투안은 삼십 분 후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가 마시던 잔에는 맥주가 절반이나 남아 있었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지 못할 것이 자명해지자 절망한 앙투안은 이 세상을 더 이상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자살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결론 짓는다. 그는 자살클럽에 가입을 하고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간다. 하지만 자살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였다. 집에서 손쉽게 자살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천장에 튼튼한 줄을 걸고 의자 위에 올라 목을 건 다음 의자를 발로 차는 것이었다. 줄이 끊어지거나 줄을 매고 있는 천장의 그 무엇이 부서질 것을 대비해 그 전에 면도칼로 손목을 깊게 긋는 것도 이중책의 하나였다. 하지만 자살자들을 일종의 승리자, 위대한 선지자로 추앙하는 자살클럽의 사람들을 보고 자살이 자신의 이상에 맞지 않는다고 여긴 앙투안은 이번에도 자살을 포기한다.

 

그는 이제 자신이 어릴적부터 잘 알고 지내던 의사에게 가서 자신의 뇌 회백질 일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외과적 수술로 인해 정말 바보가 된다는 건 영구적인 치료 방법이 될 수 있을 뿐더러 그말은 즉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기계적으로만 살다가 죽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물론 의사는 그런 앙투안에게 차라리 정신병원에 가서 항우울증 치료제를 처방받는 편이 나을 거라고 조언한다. 현실적으로 뇌 제거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앙투안은 미봉책이긴 하지만 의사의 말을 듣고 에로작을 처방받아 한 알씩 삼킨다.

 

에로작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앙투안은 자신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을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심적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지적 욕구에 대한 갈망이 느슨해지는 대신 신체적 욕구에 충실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앙투안은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바로 그가 원하던 것이었으니 결과적으로 만족이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또 다시 지적 욕구가 고개를 쳐들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생계 유지를 위해 나가던 시간 강사 일도 그만 두고 책 읽기도 그만 둔다. 머리를 쓰는 일이라면 무조건 피하고 봐야 했다.

 

앙투안은 이제 세상에 쉽게 편입할 수 있는 무난한 인물이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 그는 친구의 투자 회사에 들어가 주식 투기를 시작한다. 앙투안에게는 커피를 쏟아 잠시 키보드를 닦는 사이에 엄청난 이익이 발생하고 마는 운이 두 번이나 따라, 쉽게 부자가 되었다. 엄청난 돈방석은 앙투안에게 새로운 위치와 고민을 부여해주었다. 그는 자신이 번 돈을 어떻게 써야 할 지 고민을 하였고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벤치마킹하여 쉽게 쓰는 법을 터득했다. 고급 아파트와 외제차를 구입하고 명품 옷과 가방을 샀다. 앙투안은 인생을 이렇게 쉽게 살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예전 세상에 편입되고자 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모든 삶의 이상과 목표와 기준을 자신이 직접 세웠어야 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이미 세워놓은 기준만 따르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일컫는 인생은 너무나 말초적이고 쾌락적이어서 쉽게 중독될 만했다.

 

그런 앙투안에게 새로운 유혹이 다가왔다. 앙투안이 속한 세계에서 그가 진짜 그 세계 사람으로 편입될 수 있느냐 하는 시험이나 마찬가지였다. 친구이기도 했던 사장이 그에게 고급 콜걸들이 제공하는 성적 쾌락의 세계로 인도하자 마지막 남은 앙투안의 양심이 가슴 깊은 곳에서 비상등을 깜빡거렸다. 마침 때맞게도 앙투안은 옛 친구들, 그러니까 괴롭긴 했지만 자신의 양심과 지성을 종교삼아 살아가던 진정한 삶의 시기를 함께 나눴던 친구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앙투안은 이제 자신이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할,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삶, 괴롭긴 하지만 진짜 자신의 인생이고 길이라고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삶으로 돌아가야 할 때임을 깨닫는다. 에로작을 끊고 투기에 대한 벌금으로 온 재산을 날린 앙투안은 훌훌 털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전 아파트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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