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자신이 어느 시절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는지 설명할 생각은 없다. 그건 소년이 하려는 이야기와 별로 상관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거다. 소년은 전쟁이 일어났던 나라에서 태어났고, 다정다감하고 평범했던 부모가 일을 하던 사탕공장에 폭탄이 떨어졌고, 그래서 불시에 고아가 되어버렸고, 그 이후로는 다시는 사탕을 먹지 않게 되었으며 중요하지 않은 자잘한 것들은 전부 잊어버렸다는 거다.
입양시장에서 중고품에 속하던 소년은 운이 좋았다. 다른 많은 신상을 제치고 넉넉하고 정이 많은 새부모님을 갖게 되었다. 소년은 자신이 운이 좋다는 사실을 잘 알았으므로 새엄마 새아빠의 마음에 들도록 계속 노력하는 것만이 화목한 가정생활을 유지하는 비결임을 늘 각성했다. 잠시도 빈틈을 보이지 않고 최상의 모습만을 보이려는 소년의 노력은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그만큼 반작용도 작용했다. 착한 양부모님을 진짜 부모님들만큼 사랑할 수는 없었다는 것과, 어느새 자신이 지진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소년은 지진이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지진이라는 걸 잘 몰랐는데 어느새부턴가 어디를 가든 지진이 잦게 일어났다. 도시 곳곳에서 지진이 일어났고 지진이 일어난 장소에는 항상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자신의 감정 동요가 지진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가장 먼저 감지하고는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렸다. 자신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하에 진실을 밝힌 소년 앞에서 착하기만 한 부모님들은 소년을 절대적으로 감쌌다. 소년이 아무리 지진이 되어 재앙을 불러일으킬지라도 절대 소년을 버릴 일이 없는 부모님들이었다. 소년은 부모님 운 하나만큼은 정말 좋았다.
이제 병을 고치기 위해 소년은 여러 병원들을 전전하지만 의사들은 소년의 병을 고치기는 커녕 믿지를 못하거나 정신 이상이라고 생각하거나 두려워서 소년을 거부했다. 상냥한 의사를 만났어도 그 의사 역시 소년의 질병은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니 진짜 전문가를 찾아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한다. 진짜 전문가는 바로 다름아닌 지질학자였는데, 이 지질학자는 소년의 병을 발견하고 희열을 느끼고 감탄을 연발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소년은 자신의 병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지질학자 앞에서 짜증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야말로 정말 자신의 병을 고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일단 믿고 따른다.
지진을 불러일으키는 소년에 대한 소문은 점점 퍼져나가서, 소년은 도시에서 기피대상 일순위에 오르고 말았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 최소한의 피해를 주기위해 했던 노력들은 소년에게 돌이 되어 날아왔고 사람들은 소년이 자신들 가까이 오지 않기를 바라거나 대놓고 다른 도시로 이사가 주었으면 하고 요구했다. 하지만 그건 임시 방편일 뿐이었고 소년이 가는 도시들은 모두 같은 위험에 처하게 될 뿐이었다. 자신에게 등을 돌린 세상 앞에서 소년은 평범해지고 싶은 욕망과 사람들에 대한 원망에 휩싸였다. 다행히 소년은 감정에 휘둘리는 편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입장을 절대적으로 이해하고, 절대적 자기편인 부모님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살고자 가출을 감행하기로 한다.
소년에게는 가출이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었다. 지진인 소년에게는 항상 미약한 지진파가 흘러나왔고 지진파를 감지할 수 있는 지질학자의 기계만 있으면 소년이 있는 곳을 알아내는 것은 식은죽 먹기였다. 비록 짧은 가출이었지만 소년에게는 큰 수확이 있었는데 그건 소년이 자신의 재앙에 몰입하지 않고 자기 바깥 세상의 흥미로운 것들에 몰두를 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주변마저 고요해진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소년이 자신의 재앙을 잠재울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한 동안 지질학자도 치료법을 하나 개발했다. 만약 소년의 감정적 동요로 인해 주변에 지진이 발생하게 될 경우, 물 속에 들어가면 지진이 즉각적으로 멈추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이 방법은 소년에게 각종 불편과 감기 따위의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소지가 있었지만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소년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소년은 이제 다른 것에 몰두하는 법을 배우면서 자신의 재앙에서 벗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