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가 있고 제철소가 있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안 데바레드는 여섯 살 난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친다. 직접 가르칠 수는 없어서 도시의 반대편에 사는 지로 선생의 집에 일주일에 한두번 정기적으로 찾아가는데, 지로 선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모자는 너무 짜증나는 학생과 부모다. 피아노에 흥미가 없어 도통 말을 듣지 않는 아이 때문에 뒷골 당기는데 그런 아이의 반항적 태도마저 사랑스럽다는 듯 무조건 감싸고 드는 엄마의 태도는 뚜껑 열리게 만든다. 모데라토 칸타빌레가 무슨 뜻이냐고 아무리 물어도 아이는 묵묵부답이고 데바레드 부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선생에게 미안해 하면서도 그런 아이의 행동을 고쳐줄 생각은 전혀 안한다.
피아노 레슨 도중 큰 길 가에서 여자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와 데바레드 부인, 지로 선생은 별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려니 하고 레슨을 계속한다. 그러나 바깥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하고 사건이 심상치 않음을 안 세 사람은 창 밖으로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바라본다. 레슨이 끝난 후 데바레드 부인은 아이를 지로 선생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도록 세워두고 사건 현장을 자세히 보기 위해 군중 사이를 헤쳐 들어간다. 거기서 본 광경에 안 데바레드는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사건은 겉으로 봤을 때 더 손이 갈 것도 없는 단순한 치정살인이었다. 사랑하던 여인을 소유하지 못하자 남자가 직접 여인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죽어 싸늘하게 식어버린 여인의 시체를 가슴에 뜨겁게 안고 드디어 애인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희열에 위험한 미소를 띄며, 피가 흐른 시체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열렬히 포개는 남자의 행동은 단조롭기만 했던 안 데바레드의 삶에 불씨를 지핀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안 데바레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당한 평판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인이었다. 제철소 사장의 부인인 안 데바레드는 사장 부인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품위와 체면을 지킬 줄 아는 여자였고 그런 그녀를 도시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외경심을 가지며 대해 왔다. 그랬던 그녀가 변해버렸다. 노동자들의 삶과 좀체 접할 수 없는 고급 동네에서 좀처럼 행동 반경을 넓히지 않던 그녀가 일부러 아들의 피아노 레슨을 앞세워 도시 반대편, 남편 회사의 하층 노동자들이 북적거리며 살아가는 도시로 정기적으로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이 하루 일과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몰려드는 술집에 들러 와인을 몇 잔씩 마시기 시작했고, 거기서 한 남자와 정기적인 만남을 갖는다. 도시의 사람들은 데바레드 부인을 모를리 없으므로 애써 그녀의 변한 행동을 보고도 못 본척 눈길을 돌렸지만, 이미 사람들은 부인의 행실을 다 알고 만다.
십 년 전 결혼하고 나서 지금껏 자신의 일상에 무료함을 느꼈을지언정 불만을 품은 적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적당히 마음에 들었다. 고급 주택에 멋진 정원을 가진 삶, 저택 1층에 있는 넓은 살롱에서 남편 회사 노동자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여는 파티, 귀여운 아들이 있는 삶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판에 박힌 듯 돌아갔고 모든 사건에 대한 감정은 뜻뜨미지근했다. 미적지근한 삶에 얼마 전 데바레드 부인이 목격한 사건은, 인생이 그렇게 격한 감정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삶이라고 해서 그렇게 모험가득하고 낭만적이지 않으라는 법이 어디있단 말인가? 그녀가 행동반경을 한참이나 벗어나 지금껏 거닐어보지 못했던 동네에 정기적으로 산책을 나가는 것 전부 그런 극단적인 사건의 발생을 기대하는 심리에서 기인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데바레드 부인의 삶이나 이 소설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전개될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순진한 기대다. 사건은 아무것도 전개되지 않는다. 보통빠르기로 노래하듯이,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그렇게 천천히 진행되다 소멸한다. 피가 낭자하는 멋진 로맨스는 일어나지 않고 아이는 지로 선생의 요구에 따라 엄마 대신 다른 사람이 수업 참관을 대신한다. 그녀의 인생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무료해서, 가끔을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권태에 시달리기도 할 것이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래도 그런대로, 모데라토 칸타빌레,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같은 이런 식으로 같은 이미지를 내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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