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영화-MOVIE

비기너스 Beginners

gowooni1 2011. 11. 28. 00:11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쓸쓸하고 조용한 나날을 보내던 서른 여덟 살 독신남 올리버에게 치명 연타가 날아온다. 일흔 다섯살의 아버지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는 것 하나, 그리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커밍아웃을 결심한 아버지의 결심 둘. 결코 화목하다고만은 볼 수 없었어도 평온한 가정을 꾸려온 일흔 다섯살의 노인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한 계기는 당연히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남은 시간동안만큼은 진정한 자신으로서, 자신의 성적 취향에 충실하며 인생을 즐기기로 결심했다. 아들은 그런 노인의 결심에 반대를 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이미 살만큼 살아온 노인이 그 긴 세월동안 자신의 성적 취향을 숨겨가면서까지 살아왔다는 것에 측은함을 느끼면서도, 지금껏 자신이 태어나서 자라온 가족이라는 것이 진실을 은폐하며 노력으로 간신히 유지시켜온 산물임에 고독한 올리버는 삶의 기반마저 흔들리는 고독을 느낀다. 오직 그런 올리버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건 반려견 아더 뿐. 올리버는 아더와 말 없는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아버지와의 관계를 그럭저럭 이어나간다. 암 말기 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다니고 약을 챙겨주면서, 커밍아웃 아버지의 새 남자 애인을 씁쓸하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 어느때보다 활기찬 인생을 이어가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그나마 웃음을 찾지만 그건 아버지의 인생이고 자신의 뼛속 깊은 외로움은 방향없이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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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좀 덜어볼까 하는 마음에 나간 가장 파티에서 올리버는 안나를 만나고 둘은 즉시 사랑에 빠진다. 사랑을 해 본 경험이 이미 있는 나이의 두 남녀, 그만큼 사랑에 상처받고 외로움의 깊이를 잘 아는 두 사람, 그리고 이미 혼자만의 삶이 주는 자유로움에 길들여질대로 들여진 올리버와 안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사랑이 주는 따뜻함에 영혼을 맡겨버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안나는 자신의 집보다 호텔 방을 더 편하게 여기는 여자이고 그런 안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올리브는 주체할 수 없이 그녀에게 빠져든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는 것 이유 때문일지는 몰라도 그럴수록 올리브는 안나와 생을 함께 하고 싶다. 서른 여덟 살의 나이에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에 당황스럽지만, 이미 일흔 다섯의 나이에 새 남자 애인과 사랑을 나누는 아버지도 있는데 나이가 대수는 아니다.

 

 

아버지 할은 자신의 새 애인에게 점점 더 깊은 사랑을 느끼는 반면 심각해져 가는 병세 때문에 고통스럽다.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괴로워 억지로 애인에게 정을 떼보려고도 하지만 오히려 마음의 상처만 안겨줘서 더 힘들다. 약물치료나 수술로 더 생을 연장할 수 없어졌을 때 할은 명랑함을 가장하고 생의 마지막 날들을 게이로서의 삶으로 채운다. 예쁜 옷과 소품들을 쇼핑하고 파티를 열고 사람들을 만나며 한정된 삶이 안겨주는 공허감을 메꾸어보려 한다. 그런 아버지의 쓸쓸함에 행복을 되물으면서 올리버는 자신의 삶이 안겨주는 공허감을 느끼고 어느덧 삶의 이유가 되어버린 안나와의 사랑에 더 애착을 느낀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랑을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은 전부 상대방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탐색하는 데서 시작한다.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 시작하는 사랑은 아무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조심스러움에 신중함이 더해진다. 상대방이 과거에 느꼈을 상처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들, 상대방을 사랑하면서 그의 과거가 나에게 줄 상처들 또는 내 과거들이 상대에게 줄 상처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두려워서 아무도 사랑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남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포기해야 하는 희생.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의 미완성적인 사랑을 미묘한 감정선으로 그려 만든 비기너스엔 심리와 영상미가 다분히 철학적으로까지 엮여 있어 묘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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