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가사키 변방에 사는 쉰 여섯 살의 독신 남자다. 쉰 여섯 살이나 먹은 독신 남자라서 불쾌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혼자 사는 남자 특유의 결벽증에 가까운 습관을 여러 개 길렀다. 청소도 깔끔하게 하고 늘 말끔하게 면도도 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기혼인 내 또래 남자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퇴근 후 술마시기란 습관은 애초에 없었고, 기상 관측사라는 박봉이지만 안정적인 월급을 주는 직장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아내나 가족만 없다 뿐이지 대단한 것을 세상에 남기겠다는 욕심 없는 평범한 독신 남자로서 살기엔 큰 무리없는 생활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집엔 나 혼자 살고 있는 게 분명한데, 누군가 정기적으로 침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마시려고 사 놓은 요구르트가 보이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 둔 주스가 7센티미터나 줄어 있었다. 물을 마시고 놓아둔 병의 위치가 미묘하게 틀려 있고 비상 식량들도 알게 모르게 없어졌다. 독신남의 지나친 결벽증이 정신병으로 도지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되기도 했지만 의심이 깊어지는 것보다야 눈으로 범인을 확인해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평소 잠그고 다니지도 않던 현관문을 잠그기 시작했고 주방과 거실이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웹캠을 달았다. 이제 내 집의 침입자를 잡을 수 있는 요건은 충분히 마련했다.
회사에 도착해서 웹캠을 켰다. 내가 없는 낮 동안의 집을 몰래 본다는 것은 기분이 묘해지는 일이다. 이제 화면을 주시하고 무언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잠깐 기상 관측 화면을 보고 있다가 다시 웹캠 화면을 클릭했는데, 맙소사, 화면 아래 쪽에 어두운 그림자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분명 현관문을 잘 잠그어 놓았으니 외부에서 침입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없을텐데. 참, 창문을 제대로 잠근것 같지 않다. 그러고보니 주방에 물병이 하나 보인다. 내가 저 자리에다가 물병을 놓아두었던가? 점점 집이 낯설어지는 중이다.
집에 들어가 창문을 모두 잠그고 다음 날 회사에서 웹캠을 켰다. 화면을 보고 있다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소리를 쳤다. 맙소사. 내 집 주방에 어떤 여자가 나타나서 차를 끓이고 밥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다다미로 들어오는 햇살에 얼굴을 쬐며 한가롭게 밖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 대체 저 여자가 내 집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알 방법이 없었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경찰에 전화해서 신고하는 것. 당장 전화기를 들어 경찰더러 내 집에 가보라고, 이상한 여자 하나가 내 집에서 밥을 먹으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고를 하고 난 후 나는 웹캠으로 곧 최후를 맞게 될 여자를 관찰한다. 이미 젊음의 매력을 상실한 지 꽤 오래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여자는 느긋하게 차를 준비하고 밥을 먹는 중, 갑자기 표정이 긴박하게 돌변하더니 화면에서 사라졌다.
경찰에서 나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경찰이 집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현관문이고 창문이고 전부 굳게 닫혀 있었고, 처음에 경찰은 흔한 장난전화가 걸려들었다고만 생각했단다. 그러나 먹다 만 밥상이나 누군가 급히 사라진 흔적을 보고 집을 뒤진 결과, 벽장에서 중년 여자 한 명을 찾아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여자가 이미 내 집에서 일년 가까이 숨어 지내고 있었다는 거였다. 실직을 하고 집을 잃게 된 여자는 노숙을 하면서 도시를 전전하다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까지 흘러들었는데, 아침에 출근할 때 내가 문을 잠그지 않는 걸 멀리서 보고는 잠깐 쉬러 들어왔다고 했다. 모처럼 지붕이 있는 안락한 실내에서 휴식을 취한 여자는 이 장소를 떠나기 싫어 조금만 더 지내기로 하다가 그만 일년 가까이 벽장에서 기거했던 것이다.
나가사끼는 프랑스 소설가 에릭 파이가 일본 체류 중 읽던 신문 기사 하나에 강력히 끌려 만들어진 소설이다. 2008년 5월에 일본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소재로 구성했는데,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어서 충분히 이목을 끌 만 하다. 또 보통이라면 남자의 입장에서 이해할 사건을 침입할 수밖에 없고 기생할 수밖에 없던 여자의 시각에서도 풀어나가 흥미롭다. 자신도 몰래 1년 가까이 모르는 사람과 지내왔던 남자와, 빛도 안드는 벽장 속 생활에 만족하며 1년 가까이 몰래 더부살이 했던 여자의 이야기에 소설적 요소를 가미해 반전을 기했지만(사실 그 집은 여자가 어릴적 행복했던 시절에 부모님과 함께 지냈던 집이라던가), 오히려 그 반전이 진실성을 떨어뜨린다는 점만 빼고 전체적으로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