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없는 아이

gowooni1 2011. 11. 2. 23:13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쳐 온 마틸드는 정년퇴임을 하루 남겨둔 날 자신의 마지막 제자들에게 과제를 낸다. 열 일곱살이라는 나이에 관한 짤막한 에세이를 짓는 것. 열 일곱 나이 학생들에게 그 나이에 관해 생각해보게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열 일곱살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결코 신중할 수 없는 나이 열 일곱. 마틸드는 자신의 열 일곱 생일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그 이유를 말 할 수 없다. 마틸드의 열 일곱 생일은 자신이 딸아이를 하나 나은 날이며 동시에 그 아이를 버린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저지른 실수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돌이킬 수 없는 과오가 되어갔다. 마틸드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시험에 합격해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잡고 스물 대여섯 살 즈음에는 남편을 만나 결혼도 했다. 사내 아이 둘도 낳고 남들 보기에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아가는 듯 보였던 마틸드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은 멍들어 갔다. 낳자마자 안는 것도 거부하고 곧장 익명출산에 동의하여 입양시킨 딸아이가,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그리움에 사무치는 형태없는 갈망으로 변해갔다. 입양시킨 기관으로 가 딸의 행방을 찾고자 하지만 한 번 X 출산에 동의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익명을 취소하고 기관에 연락처를 남기는 것 뿐이다.

 

한 편, 마틸드가 살고 있는 동네와 몇 정거장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우수한 과학자 겸 교수로 명성을 얻고 있는 사십대 초반의 여인이 살고 있었다. 입양된 기관에서 부여받은 첫번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던 안느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고 살아왔다. 양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어도 마음 한구석엔 늘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을 버린 것에 대한 증오가 뒤범벅되어 남아있었고 이는 공부에 몰입하도록 하여 우수한 인재가 되도록 한 몫 했지만,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만 가는 우울증의 근본 원인이기도 했다. 안느에게는 열 일곱 살 즈음의 딸아이 하나가 있었는데 레아 역시 자신의 엄마가 입양아였다는 과거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오히려 자신이 엄마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기특한 소녀로 자라났다.

 

레아는 안느의 마음의 병을 알고 엄마에게 친엄마를 찾아보자고 제안을 하지만, 안느는 자신이 X출산으로 태어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얻게된 마음의 상처 때문에 쉽사리 행동하지 못한다. 신중하지 못한 나이에 걸맞게 레아는 자신의 엄마의 엄마를 찾아주려는 프로젝트를 강행하고, 안느도 결국 자신의 근본적 욕구에 충실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입양기관으로 향한다. 열 일곱 살 때 찾아갔던 기관을 사십살이 넘어 찾아간다는 사실에 어떤 희망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입양기관 담당자는 안느에게 이렇게 말한다. 운이 좋으시네요, 친모께서는 이십여 년 전에 이 곳에 와서 자신의 연락처와 신분을 남기고 가셨어요. 안느는 가슴 벅차 하면서도 자신의 친모가 알코올 중독자나 거리의 부랑자인 건 아닐까 걱정한다.

 

『없는 아이』는 프랑스와 유럽 일부 지방에 아직도 존재하는, 익명 출산 제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리고자 한 작품이다.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를, 익명 출산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탈당한 사람들의 고통과 부당함을 호소한다. 익명 출산 아이들이 대개 스물 다섯 이내의 경제적 능력이 없는 어린 엄마들로부터 태어났음을 감안하면 어쩌면 친모를 찾지 못하게 하는 이 제도가 합리적일 수 있다. 실제 수많은 익명출산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친부모를 찾아갔을 때 큰 고통을 겪고 있으며 차라리 모르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는 결과를 종종 가져오곤 한다. 작가는 합리성이라는 측면보다 고통스러워도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 충족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모양이지만 그것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의심의 여지는 존재한다. 작품 속에선 다행히 마틸드의 사회적 위치나 안느의 지위가 서로에게 당당할 수 있어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보다 보편적인 경우일 때에도 해피엔딩일지에 대해 의심을 품으면, 익명출산 반대에 대한 작가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할 수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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