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앨라배마 송

gowooni1 2011. 11. 8. 22:55

 

 

 

위대한 개츠비를 탄생시킨 세계대전 세대 최고의 아이콘 스콧 피츠제럴드에게는 작품에 무한한 영감을 주는 뮤즈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젤다. 앨라배마에서 나고 자란 대법관의 딸이며 사교계의 여왕으로 추앙받던 그녀였으니 인기도 많았고 구혼자도 많았다. 그러나 젤다가 선택한 인생의 남자는 스콧이었다. 엄청난 생명력의 소유자이자 인생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많았던 이 여인은 넘치는 야망을 주체하지 못해 스펙터클한 삶을 살아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리고 그런 삶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남자는 역시 그녀와 같은 영혼을 지닌 스콧 피츠제럴드 뿐이었다.

 

스콧과의 결혼은 결혼 자체로 홍보 효과였다. 그들의 결혼식은 스콧이 쓴 책의 판매부수를 올리는데 일조하였고 젤다는 얼마 가지 않아 여러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스콧은 최악의 남자이며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하기위한 훌륭한 남편감이 절대 될 수 없다는 것, 잠시도 지루해지지 않을 만큼 스펙터클한 삶을 제공해주기는 하겠지만 루머와 스캔들로 가득찰 인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라는 것, 자기 인생에서 진짜 사랑을 하고 싶다면 남편이 아닌 진짜 애인을 구해야 한다는 것, 게다가 스콧 역시 자신을 그런 목적을 노리고 소유하고자 했기 때문에 성적으로 문란해지더라도 스콧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것 등을 말이다.

 

커플의 부부생활이야 어쨌든, 겉으로 보기에 둘의 결합은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이었다. 스콧과 젤다는 둘 다 성공하고 싶어 안달인 인물들이었다. 젤다는 자신의 출생적 우위와 예쁜 얼굴을 이용하여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스캔들을 만들었고, 이 염문들은 곧장 스콧이 써낸 책의 판매부수에 기하급수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젤다는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성공을 남편의 성공을 통해 보상받고 싶어했고 그 때문에 추하기 그지없는 행동들을 벌였다. 하지만 그녀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단지 소유만을 원하는 스콧의 가짜 사랑이 아니라 온 몸을 떨어가며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사랑, 그리고 진짜 자신이 이룩해서 쌓은 성공임을 알게 된다.

 

젤다는 이제 자신만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젤다가 글을 쓴다는 것엔 또 위험요소가 뒤따른다. 천재로서의 영감이 고갈된 스콧이 젤다의 노트를 찾아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젤다의 노트에서, 모든 에피소드를 가져가 자신의 소설에 그대로 써먹는 스콧 때문에 그녀는 미칠 지경이다. 게다가 스콧은 마치 결혼 서약서가 남편이 아내의 창작력까지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계약서로 착각하고 있어서, 젤다는 자신만의 글을 써 출판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더욱 불태운다. 젤다의 노트를 발견하지 못하고 소재도 고갈된 스콧은 화가 나서 이렇게 외친다. 당신은 내 소재를 전부 훔쳐가고 있어. 그러나 젤다는 당당히 말한다. 그건 당신의 소재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겪어온 삶일 뿐이라고.

 

자신의 통제권 밖으로 벗어날수록 스콧은 젤다를 정신이상자로 취급하고 마침내 그녀를 정신병원에 가두는 데 성공한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스무살 무렵에 혜성처럼 나타나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모든 영광을 손에 넣었지만 그런 권세는 십년도 채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만다. 결혼에서도, 글쓰기에서도, 사랑에서도, 춤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 못한 젤다가 마지막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그림이다. 스콧의 지배하에서 그 어느 것에도 재능을 도둑맞을 위협을 느끼지 않고 마음껏 몰두 할 수 있었던 그림 덕분에 젤다는 조금씩 삶에서 구원된다. 그러나 끔찍했지만 완벽한 인생의 구심점이던 스콧이 사십 대의 젊은 나이로 죽어버렸을 때, 젤다의 인생도 더 이상 중심이나 의미가 없어진다. 스콧과 젤다는 서로에게 절대자이자 필요악이었다.

 

『앨라배마 송』이 질 르루아의 완벽한 상상에서 나온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이걸 읽다보면 하도 설득력이 있어서 정말 그 시대에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젤다의 성격이 정말 그러하고 스콧이 정말 그런 인물인지 확인하고픈 충동이 생긴다. 마치 정말로 젤다와 스콧의 사이가 그랬던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게 허구라는 사실에 안도감도 든다. 만약 저자의 상상이 100퍼센트 맞다면 그들은 너무나 불행한 커플이니까. 자신에게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된 젤다를 위한 글을 쓰겠다고 한 저자가 내놓은 작품이니만큼 소설은 절대적으로 젤다의 눈으로 사건을 비추고, 젤다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완벽하지 않은 인물인지에 관계없이 그녀의 편에 서도록 저자는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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