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안녕 시모기타자와

gowooni1 2011. 10. 23. 19:59

 

 

 

이번엔 요시모토 바나나가 스물 다섯살 짜리 여자애가 되었다. 항상 그렇듯 완벽하게 행복한 여자 주인공은 절대 아니다. 이번 주인공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운 아픈 상처가 있고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한 생활이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었다. 작은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많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수입을 올리던 아빠가 어느 날 시체로 가족 품에 돌아왔다. 차라리 아빠가 혼자 죽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빠 옆에는 애인으로 추정되는 젊은 여자의 시체도 함께 발견되었다. 아빠가 없는 메구로의 집에서 엄마와 함께 예전처럼 살아간다는 게 너무 힘들어서 주인공은 시모기타자와로 이사온다.

 

관광명소로 늘 시끌벅적하고 예쁜 가게가 많은 시모기타자와는 예전의 우울한 삶을 잊어버리기에 적당히 번잡하고 적당히 활력있는 동네다. 주인공은 오래 되어 낡았지만 덕분에 가격에 비해 제법 넓은 집을 빌릴 수 있었다. 집 앞에서 보이는 작은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낮에는 레스토랑 점원으로 열심히 지내고 밤에는 작지만 아담하고 편안한 집에서 새 삶을 살아간다. 어느 날 이 작은 방에 엄마가 들어온다. 아예 눌러살려고 온 엄마는 메구로의 큰 집에서 보아온 엄마가 아니다. 완벽하게 세팅된 머리에 잘 손질한 피부를 하고 고급 백화점에서 구입한 옷과 가방으로 치장한 채 난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중년 여성이랍니다, 하는 분위기를 완벽히 벗어난 엄마다. 엄마는 길거리 가게에서 사 입을 수 있는 꽉끼는 티셔츠를 입고 헐렁한 추리닝 바지를 입고 화장도 하지 않은 맨 얼굴로 동네를 활보하며 살아간다.

 

처음 엄마가 들어오던 날 주인공은 강경하게 반대를 한다. 이래서야 자신이 독립을 한 의미가 전혀 없어지지 않겠느냐고 따진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을 엄마로 보지 말고 그냥 실연당한 친구가 하나 얹혀사는 셈 쳐달라고 하며 방세도 내겠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실제로 엄마는 메구로 집의 모든 것을 간섭하고 지배하려 드는 엄마의 모습을 던져버리고 딸의 사생활을 절대적으로 존중해준다. 사실 어쩌면, 엄마가 지금껏 지내온 엄마로서의 모습은 아빠가 바라는 엄마의 모습과 일치하기 위해 억지로 애써 살아온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주인공은 생각한다. 엄마는 이제 아빠를 만나기 전, 결혼을 하기 전의 평범하게 일상을 즐기는 독신 여자의 모습을 천천히 되찾아간다.

 

주인공은 시모기타자와에서 찾은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생활패턴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꿈을 찾아간다. 비록 아빠의 죽음 때문에 알게 된 인연이지만 멋진 남자도 만나 가슴 두근거리고 자신이 일하는 레스토랑 주인을 보면서 언젠가 소박하지만 사람들에게 맛의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열겠다는 꿈도 꾼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종종 아빠의 꿈을 꾸는데, 벌써 아빠가 죽은지 이 년이 지났는데도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던 새로운 인연은 한 번 자고 나니 더 이상 함께 할 일이 없어져버려 서글퍼져 버리고 언제까지고 지속될 줄 알았던 새 삶은 레스토랑 건물이 철거되면서 끝나버린다. '나'는 아직도 아빠의 꿈을 꾸면서 아빠와 함께 죽은 여자에 대한 미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레스토랑이 문을 닫고 당분간 할 일이 없어진 날, 주인공은 아빠의 시체가 발견된 지점으로 가서 현장을 확인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무작정 떠난다. 혼자 죽기 싫어서 함께 죽을 사람을 애타게 찾았던 여자와 그 희생양이 되어 재가 되어버린 아빠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확인을 한다면 더는 그 과거에 얽매이는 일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주인공은 지극히 요시모토 바나나다운 방법-쉽게 공감가지 않는 그 방법-으로 과거의 아픈 기억을 떨쳐버리는 의식을 치르고 다시 새로운 삶을, 여전히 시모기타자와에서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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