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인내의 돌

gowooni1 2011. 10. 22. 13:46

 

 

 

 

셍게 사부르. 페르시아 어로 인내의 돌이라는 말인데, 그 돌의 기능은 사람의 모든 고민과 걱정, 비밀과 번뇌를 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인내의 돌이 깨지는 날이 오면,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의 모든 번뇌도 함께 깨진다. 아랍어권 사회의 사회적 약자들이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세상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다들 하나씩 인내의 돌을 가지고 있었던 덕분일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셍게 사부르가 언젠가 깨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인내의 돌』은 매우 단순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다. 밖에서는 밤마다 총소리가 들려오는 세상의 한자락에서 무대는 시작된다. 목에 총을 맞고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보살피는 아내는 매일같이 꾸준한 간호를 하러 방에 들어온다. 목에 꽂아놓은 관 속으로 설탕과 소금을 섞은 물을 조금씩 떨어뜨려주고 안구가 마르지 않도록 눈에 안약을 넣어주고 시트를 갈아주고 옷을 벗겨 몸 구석구석을 닦아준다. 아내는 두 딸을 보살피면서도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돌봐야하는 자신의 처지에 한탄을 하다가도 쿠란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쿠란의 문화에서는 남편이 살아있음에만도 감사를 해야하는데, 그런 자신에게 새삼 죄책감이 느껴지고 만다.

 

그러나 이 아랍어권 여성은 그 세상 문화가 요구하는 대로 살아온만큼 속에 쌓인 것이 너무나 많다. 매일 대답없고 거동없는 남편을 간호하면서 그녀는 조금씩 자신 안에 담긴 말들을 풀어나간다. 자신의 의사라고는 전혀 없이 그저 차례가 되어 하게 된 약혼, 얼굴도 모르는데 전쟁터에 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단검을 두고 홀로 한 결혼, 삼 년간 시어머니의 순결 감시 속에 처음으로 마주한 남편,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성급하게 치룬 첫날 밤, 밤 중에 갑자기 당한 일방적인 성교에도 생리 중임을 말하지 않았다고 자다가 호된 일을 당한 날, 임신이 되지 않아 쫓겨날 위기에 처한 나날들, 남편이 불임이었는데도 자신이 불임이라는 억울한 판정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맺은 다른 남자와의 관계들.

 

그녀는 자신이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 지 알 수 없다가도 하면 할수록 마음 속에서 점점 큰 해방감을 느끼며 도취된다. 그녀는 매일같이 누워있는 자신의 남편을 셍게 사부르로 칭한다. 밖에서는 밤마다 총소리가 나고 다음 날 아침이면 시체가 발견되어 어디론가 실려가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남편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간호한다. 자신의 인생을 발목잡던 남편은 이제 어느새 자신의 고민을 모두 들어줘야만 하는 셍게 사부르가 되어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살아있을 동안 한 번도 반드시 있어야만 했던 적이 없는 남편은 식물인간이 되어 드디어 온전히 여자의 것이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무장한 남자 셋이 그녀의 집에 침입한다. 그녀는 자신의 몸과 식물인간인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나는 창녀에요. 남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을 보았다는 온갖 모욕을 하고 몇 가지 물건을 강탈한 채 집을 떠난다. 터번을 쓴 남자들에게 창녀를 강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오욕인 것이다. 거짓말로 위기를 넘긴 이후 며칠이 지난 밤, 그 세 명 중 한 명, 그것도 어린 소년이 그녀의 집을 찾아온다. 사춘기 소년은 자신의 풀 길 없는 성욕에 대한 해방구를 찾아 그녀를 찾아오고, 그녀는 사실 자신이 그런 여자가 아니며 결혼까지 하고 남편이 있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총을 든 소년에게 그런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소년은 여자의 발치에 지폐 몇 장을 뿌리고 여자는 빨리 끝내라며 바닥에 누워 다리를 벌린다. 그녀는 남편을 숨겨놓은 방에서 진짜 처음으로 창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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