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도가니

gowooni1 2011. 10. 15. 21:22

 

 

 

생활적인 측면에서 무능한 강인호는 아내의 등살에 못이겨 서울에서 몇 시간 걸리는 도시로 내려간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 농아 학교에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기 위해서다. 아주 고차원적인 도덕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그였지만, 막상 자애학원에 도착해서 처음 맞닥뜨린 현실은 혐오감에 치를 떨게 만든다. 자애학원 교장 이강석이, 이미 넘치는 선생들도 많긴 하지만 아는 사람의 소개로 오게된 강인호의 처지를 어여삐 여겨 통상 일억 납부하기로 되어 있는 돈을 오천으로 깎아준다는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도 달리 갈 곳이 없는 현실에 일단 무릎꿇기로 하며 강인호는 이름도 거창한 학교발전기금 오천만원을 내고 자애학원의 기간제 교사로 부임한다.

 

거기서 이 이방인은 자애학원의 끔찍한 속사정을 조금씩 알아간다. 일부러 알려고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도 그것들을 알게 되면 좋을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그 속사정을 알게 되면 자신의 높지도 않은 모럴리티하고 부딪히게 될 것은 뻔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저히 양심상 굴복할 수 없는 현실들을 알게 된다. 청각장애에 지적장애까지 겹친 아이들이 학교장 이강석, 행정실장 이강복, 지도교사 박보현의 성적 노리개로 몇 년간 지내왔다는 현실. 너무나 반복적으로 강행되고 있는 성폭행들에 지적장애 아이들은 그걸 수치심으로 생각하지도 못한다. 그저 심한 마찰로 파열된 아랫도리가 너무 아플 뿐이다.

 

성적 노리개로 전락한 아이들 중 몇 명은 극심한 고통에 죽어나고 경찰은 이 이상한 사태를 알면서도 쉬쉬한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이, 교육청과 시청과 경찰과 무진에서 가장 큰 교회까지 잠식한 이강복 형제의 영향력 아래 감히 세상 밖으로 고개들지 못한다. 이 현실에 강인호는 격분하고 아이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되찾기 위한 행동을 개시한다. 처음엔 피해학생들이 당한 것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만 있으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영향력 있는 모든 것들과 결탁한 이강석 형제들의 범죄는 증빙자료가 있다고 해서 쉽게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교육청에서는 시청 소관이라 하고 시청에서는 교육청 소관이라며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경찰은 명백한 증거가 있어도 그들을 구속하지 않았다. 참다못해 선택한 최후의 방법은 언론. 드디어 서울에서 방송차량이 도착하고 이 사건은 전파를 타고 세상에 공개된다. 여론이 거세지자 이강석 이강복 형제도 구속을 피할 수 없다.

 

사건이 만천하에 공개되면 부조리한 현실은 막을 내리고 농아들이 살기 좋은 현실이 도래할 수 있었는데 그것 역시 순진한 생각이었다. 이제 사건은 겨우 시작이었다. 이강석 형제의 막강한 재력과 영향력은 유죄를 무죄로 만들 수도 있었다. 유죄를 유죄로 남기고 그들의 죗값을 치르도록 하는 것이 싸움의 포인트가 되었다. 엄청난 돈을 들여 지적장애아들의 지적장애부모를 매수하고 전관예우 가능한 변호사에게 엄청난 수임료를 퍼붓고 기존에 자신들이 사회에 풀어놓은 영향력을 총동원해서 자애학원 설립자의 아들들은 죄를 피해가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강인호는 현실에 진다. 교장 이강석은 징역 2년 육개월에 집행유예 이년, 동생 이강복은 징역 육개월에 집행유예 이년, 돈없는 지도교사 박보현만 육개월의 실형을 살고 나와야 했다. 이 솜방망이 처벌에 농아들은 절규하고 사람들은 탄식한다.

 

도가니는 이 마지막 장면, 청각장애인들의 절규가 법정을 가득 매웠다는 한 인턴기자의 기사를 보고 공지영이, 특유의 정의감에 불타오른 걸 시작으로 빚어진 소설이다. 실제 자애학원은 민주화의 메카였던 광주광역시의 인화학교가 배경이다. 공무원이던 이강석의 아버지가 국가의 복지예산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미리 알고 돈을 노려 설립했다는 그 학원은 돈있는 자들의 소왕국이었고, 애꿎은 장애인들은 그들의 돈을 불려주기 위한 이용 용도를 넘어 성적 폭력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학교장 이강석의 실명은 김강석으로 소설 속에서 성만 살짝 바뀌었다. 그의 얼굴을 한번 보고싶어 인터넷을 검색해 본 사람들은 이 수치스러운 인간이 죄값을 치르지도 않고 암으로 얼마 전에 사망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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