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마음의 파수꾼

gowooni1 2011. 10. 6. 22:46

 

 

 

 

마흔 다섯살의 매력적인 중년 여성 도로시는 애인 폴과 함께 밤길을 드라이브하다 사람을 칠 뻔했다. 다행히 직접적으로 치지는 않았는데 이 청년이 자동차로 뛰어들 당시 약물을 너무 많이 복용을 한데다 혼자 구르는 바람에 크게 다치고 말았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므로 책임 질 필요는 없는데 도로시는 자진해서 청년을 자기 집에 묵게 한다. 너무도 잘생긴 청년의 외모에 본능적으로 대스타가 될 소질을 감지하기도 했고, 사실 그냥 순수하게 청년의 알수 없는 매력에 궁금증이 일기도 했던 것이다. 남성편력이 심한 도로시가 가끔 느끼는 세상 모든 남자들을 구원해주어야 한다는 감정이 타이밍맞게 벅차올랐던 이유도 있다.

 

애인 폴은 당연히 이런 즉흥적이고 사리에 맞지 않는 정신나간 행동에 도로시를 비난한다. 도로시는 화가 난다. 자신의 결정에 이래라저래라 할 만큼 폴에게 자격이 있지도 않고 스스로 살아온 삶에 대한 자세를 송두리째 비난당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녀가 청년 루이스에게 매력과 애정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겨우 스물 여섯인 그에게 이성적 감정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폴의 오해는 불쾌하기만 하다. 도로시는 폴에게 자신은 순수한 마음으로 루이스를 도와주려고 하는 것뿐이고 그가 다 나으면 집에서 나가게 될 것이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한다.

 

루이스는 좀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하긴, 약물을 하고 자동차로 뛰어들었다는 것 자체가 평범하지는 않았지만 뭐랄까, 멍하면서도 날카롭고 여기 있으면서도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은 오묘한 분위기의 소유자였다. 그는 도로시의 호의를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면서 이것저것 요구를 하고, 청년의 건방진 매력에 도로시는 적당히 맞추어 준다. 그러다 루이스의 다리가 다 나아 두 발로 자신에게 걸어오는 순간 도로시는 어쩔줄 모르는 마음을 간신히 감춘다. 루이스가 두 다리로 걸어다닐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도 해보지 못한데다가 이제 그가 더이상 도로시의 집에 머물 명분이 없어졌다는 걸 겨우 알아차렸던 거다. 청년이 어디론가 떠나겠다고 해도 그녀는 막을 이유가 없었다. 막연하게 체념하던 순간 청년은 자신의 미래가 도로시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녀가 자신이 이 집에 머물길 원하면 그렇게 하겠으며 그렇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답한 것이다. 물론 도로시는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함께 머물면 좋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도로시를 향한 루이스의 사랑은 맹목적으로 변한다.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잘해주던 사람들과 달리 도로시는 자신에게 바라는 것 없이 순수하게 잘해준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기준이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루이스는 도로시를 괴롭히는 사람은 가차없이 죽인다. 그녀를 사랑했지만 대단한 여배우의 사랑을 얻기위해 이혼을 한 전 남편 프랭크는 도로시의 집 근처 모텔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되고, 도로시에게 모욕적인 말을 한 제리 볼튼은 유흥가에서 죽은 채 신문에 나고, 전남편을 빼앗아간 것도 부족해 도로시의 탐나는 애완견인 루이스를 탐하다 뜻대로 되지 않아 화를 내며 돌아간 루엘라는 커브길에 절벽아래로 추락하여 죽는다. 자신이 데리고 있던 아름답고 순종적인 청년이 알고보니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이상한 도덕관념의 살인마라 생각하니 도로시는 아찔하지만 살인의 모든 원인이 자신인데다 여기서 이제 그와의 관계는 빼도박도 못하게 생겼다.

 

도로시는 루이스에게 묻는다. 넌 나를 괴롭힌 사람들을 하나씩 다 죽여나가면서 어째서 폴은 죽이지 않는거지? 그는 이상하지만 너무나 당연하다는 눈빛으로 대답한다. 그가 죽으면 당신이 아파할테니까요. 하지만 그가 당신을 아프게 하면 그때는 가차없이 죽일거에요. 사랑하는 여자의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에 폴이 바다에 빠졌을 때엔 죽음을 불사하고 8미터 높이에서 다이빙하여 그를 구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사람을 살리는 것도 오직 도로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올 수 있는 청년이 바로 루이스였다. 루이스가 그토록 매달리는 그 사랑은 자신의 육체가 도로시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않기 때문에만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플라토닉한 사랑이었다.

 

태풍이 로스앤젤레스에 몰아치던 날 길거리는 물바다가 되고 방치해둔 정원엔 자동차가 둥둥 떠다니고 전기와 전화는 온전히 끊긴 채 루이스와 도로시만이 집에 고립된다. 외부와 아무런 연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얻게된 둘만의 시간을 그들은 감미롭게 보낸다. 도로시는 요리를 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루이스는 그녀를 위해 커피를 끓이고 기타를 연주한다. 물벼락 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음악소리를 들으며 기이하게 평온한 공간 속에서 도로시는 루이스와 함께 있을때 마음이 편하며 즐겁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하지만 한밤 중 잠을 자고 있을 때 태풍이 절정에 도달하여 지붕이 반 날아가고, 도로시는 두려움에 울부짖으며 순수하게 남성의 살갗 속에서 마음의 위안을 느끼고 싶어 루이스의 품 안으로 파고 든다. 이제 둘은 뭔가가 어긋났음을 깨닫는다. 달콤한 입맞춤을 하자마자 루이스는 도로시의 목을 조르고, 그녀는 손가락의 압박을 느끼며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는 대신 그를 설득한다. 너가 너무나 사랑하는 나는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죽이게 되면 넌 분명 후회하게 될거야. 결국 루이스는 울부짖으며 도로시에게 무너져내리고 둘은 살아남는다. 다음날 전화를 걸어 도로시는 폴에게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육개월간의 긴 유럽 신혼여행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날, 이미 오스카 상을 타 유명인사가 된 루이스는 공항까지 폴과 도로시 부부를 마중나온다. 이제 루이스에겐 거대한 집과 고급 자동차가 있고 접대해야 할 많은 손님들이 있고 신경써야 할 후견인들이 존재하는 거물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파티에서 도로시만을 졸졸 따라다닌다. 잠시 루이스가 다른 사람에게 독점되는 시간을 틈타 부부는 파티장에서 빠져나온다. 새 롤스로이스 사이를 무사히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려 할 때, 일 년 전처럼 누군가가 헤드라이트 앞으로 몸을 던진다.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도로시 쪽으로 다가와 문을 연 루이스는 말한다. 나는 여기가 싫어요, 나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루이스, 이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 나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면 저들을 다 죽여버릴거에요. 잠이 든 루이스를 겨우 침실에 눕히고 나오면서 도로시는 폴에게 묻는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동안 그와 함께 지내게 될 것 같아요? 폴은 흔쾌하게 말한다. 영원히! 그건 당신이 더 잘 아는 바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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