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생명의 한 형태

gowooni1 2011. 9. 14. 22:08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작가 아멜리는 평소 많은 편지를 받는다. 거기엔 별의별 내용이 다 있다. 당신의 유명세로 유명인을 만나는데 중개 좀 해주세요, 내가 쓴 소설을 읽어주세요, 나도 당신처럼 글을 쓰고 싶은데 생활의 여의치 않으니 후원자가 되어 주세요, 이런 고민이 있는데 해결 방법 좀 제시해 주세요, 등등등. 터무니없는 내용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고 답장을 쓸 가치가 있는 편지들은 아멜리의 수집품이 된다. 아멜리는 편지 쓰는 것을 무척 좋아했으므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온 편지라고 해서 답장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특히 그 내용이 충분히 흥미를 끌 수 있다면, 기꺼이 펜팔 친구가 되어 주기까지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멜리는 짧은 편지 한통을 받는다. 너무 짧은 편지의 내용 때문에 오히려 궁금증을 일으키는 편지였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국제적인 펜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으로 최소한의 예를 갖춰 친필사인이 든 작품 하나를 보낸다. 즉각 답장을 받았는데 밑도 끝도 없이 무례하다. '당신의 편지는 잘 받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어쩌라는 말이죠?'. 아멜리도 즉각 응수한다. '구워먹던 삶아먹던 화장실에서 휴지대신 쓰던 알아서 하세요.' 이런 식으로 시작한 펜팔은 상대의 즉각적인 반응이라는 상호간의 성실함 하에서 계속 되고 드디어 둘 사이에도 펜팔이라 할 수 있을만한 내용들이 오가기 시작한다.

 

그녀의 흥미를 끈 남자는 이라크에 파병된 미국 병사. 그는 자신을 멜빈이라고 소개한다. 거짓이 무한대로 수용되는 편지라는 매체 하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멜빈은 제대로 된 직장을 얻지 못해 오십 킬로그램까지 몸무게가 빠지는 등의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제법 높은 수준의 숙식이 제공되는 이라크 파병군에 지원을 하고 군인이 되었다는 스토리를 꺼낸다. 총알받이라는 고위험성이 잠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초 생존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던 멜빈 같은 사람들에게 이라크 파병군은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그러나 이내 곧 멜빈은 병에 걸리고 말았는데, 그건 전 세계적인, 특히 미국에 가장 심하다고 알려져 있는 병, 비만증이었던 것이다.

 

멜빈은 아멜리가 비만이라는 주제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입장을 작품세계에서 줄곧 표현한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물론 아멜리는 그런 멜빈의 스토리에 감동을 받으며 비만증에 걸린 멜빈에게 우정을 나누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멜빈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보통의 비만증이 걸린게 아니었다. 50킬로그램 나가던 몸무게에서 130킬로그램이 불은 비만증, 도합 180킬로그램의 초비만증이었고 더 문제는 멜빈에게 다이어트의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멜리에게는 그런 것 쯤은 아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녀가 뜨악한 사실은 멜빈이 자신의 살들에게 하나의 의미를 부여했다는 건데, 130킬로그램이면 거의 두 사람의 몸무게를 더한 셈 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몸 안에 품었다고 자기합리화 시키는 거였다. 아내에게는 아름다운 세헤라자드라는 이름까지 붙이면서.

 

아멜리는 이 비만증 환자에게 측은지심을 느끼면서도 더욱 흥미를 느낀다. 한편으로는 이 구제할 길 없는 남자에게 하나의 자립가능한 생존 루트를 뚫어주고 싶기도 했다. 그녀는 멜빈에게 하나의 예를 든다. 예전 어느 여학생이 거식증에 걸린 자기 몸을 사진으로 찍으며 졸업작품을 만들었는데 호평이었다, 당신에게도 지금의 고통이 언젠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신나간 비만증 환자 멜빌은 아멜리의 말에 조금의 회의도 느끼지 않으며 자신 역시 자기의 거대한 몸을 하나의 예술 프로젝트로 승화시켜보겠다, 자신을 후원해 줄 수 있는 적절한 화랑이 있으면 하나 소개해달라, 그렇게만 되면 절대 은혜를 잊지 않겠다라며 아멜리가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여겼던 진부한 미국식 인사말까지 첨부해 답장했다.

 

과연, 이후 아멜리와 멜빈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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