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집착

gowooni1 2011. 9. 3. 13:13

 

 

 

글쓰기의 소재를 찾는 것은 작가로서 늘 고심되는 일이다. 글감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을 것이냐 외부에서 찾을 것이냐가 고민의 시작점인데 아니 에르노는 철저하게 내부에서 찾는 길을 택했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은 결코 글로 쓰지 않는다는 철학의 소유자라서 글들이 대부분 진실성 짙다. 자전적 허구라는 말도 허구라는 말 자체가 의미없을 정도다. 읽다보면 이것을 소설로 볼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만 이미 작가 본인이 문학을 딱히 무어라 정의하려는 노력을 애초에 버렸다고 하니 고민하는 독자가 되어보려는 것도 조금은 부질없다.

 

그녀의 텍스트가 문학으로서의 예술성을 높이 사지는 못하는 반면 대중적으로는 상당히 성공을 했는데 얼핏 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글들은 너무 외설적이고 적나라하고, 은유라던가 심적 고양감을 충족시켜주는 아름다운 영상미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직설적이고 자신의 저급한 심리 저변까지 낱낱이 파헤치는 문장들이 쉽게 읽힐 뿐만 아니라 택한 소재도 자극적이다.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본능에 구미가 딱 맞으니 그녀가 작가로서 사회적 위치를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집착』역시 그녀가 겪은 사건이 발로다. 애인과의 관계를 먼저 끝내놓고, 그 남자에게 다른 애인이 생기자마자 나타난 질투와 집착이라는 감정 때문에 고통스러운 몇 개월의 심리 과정을 상세히 기술한 글이다. ' 나'는 오랜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드디어 얻게 된 자유를 포기할만큼 애인을 사랑하지는 않았는데, 그 남자에게 새 여자가 생기자마자 다시 불타오르는 광기어린 욕망 때문에 죽을 것만 같다. 그는 새로 생긴 애인과 함께 살기로 했으니 예전처럼 쉽게 연락을 해서는 안되며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제한되어 있고 관계에도 한계가 생겨버렸으니 조심해달라는 말을 전한다. 그 순간 나의 모든 신경은 그와 그의 새로운 여자에게 쏠려버린다.

 

나는 그에게 새 여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캐묻지만, 그는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물론 이름도 언급하지 않고,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욱 그 여자의 정체를 밝혀내고자 하는 광기에 사로잡힌다. 조금씩 구슬려서 알아낸 정보의 실마리를 통해 인터넷의 검색엔진을 돌리고 전화번호부를 뒤지고 그 여자가 썼을 거라고 추측되는 논문들을 뒤지며 시간들을 보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괴로운 일은, 그 여자를 보호하려고 하는 남자의 태도 때문이다. 이제 남자에게 있어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존재이지만 그녀는 이름까지도 보호해야 하는 소중한 존재이고, 그와 동시에 나를 까딱하다간 최악의 일도 저지를 수 있는 위험한 여자로 생각한다는 모든 암시들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과의 관계가능성의 여부를 확답하지 않는 남자의 모호한 태도는 더욱 고통스러울 뿐이다.

 

나의 욕망을 잘 살펴보면 결론은 하나다. 그가 나한테, '이제 그 여자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당신에게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하는 말을 듣는 것. 하지만 나는 그 이후에 올 결과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토록 욕망하던 그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을 때 그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행복하고 자신감에 넘치겠지만 그 이후의 삶은 쉽게 예측 가능하리라는 것. 나는 다시 그와 함께 사소한 일상을 나눌 것이고 점차 매너리즘에 빠질 것이며 그토록 중요하다고 여겨왔던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다시 혼자 있고 싶어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욕망이 비이성적임을 인지하고 있고 거기서 반드시 헤어나와야만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에르노가 자신의 심리에 대해 이렇게 상세하게 기술하는 것에는 일종의 구원의 목적도 있다. 글을 씀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 수 있고 자신이 겪은 것들에 대해 거리를 두면서 그것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단다. 집착에 빠져있을 때 자신은 온전히 그 감정에 동화되어 있지만 집착에 빠진 나를 기술함으로서 거리를 두고 그런 상태에서 조금씩 헤어나올 수 있다. 글을 써버림으로서 순간적으로 얻을 수 있는 쾌감이 지속적으로 공급됨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구원인지는 작가 본인만이 알 것이고, 그녀의 심리상태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을수록 그녀의 텍스트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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