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던 조나단은 열살 무렵 어머니와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이유로 잃고 먼 친척의 농가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자란다. 이제 막 농사꾼으로서 재미를 붙일 즈음엔 또 터진 세계대전 때문에 징집당하여 얼마간 군인으로 지내야 했다. 그랬기 때문에 돌아왔을 때에는 절대적 평화가 필요했고 절대적으로 생활에 변화가 없어야 했다. 그런 조나단의 요구에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주 적합하게 보였고 그래서 아저씨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동네의 한 처녀와 결혼을 하라고 했을 때에는 오히려 기쁠 정도였다. 그러나 처녀는 조나단과 결혼한 지 4개월이 지나자 아이를 낳았고 이후엔 외국인 노동자와 눈이 맞아 도망을 가버렸다.
자신의 평화는 자신이 만들어 지켜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조나단은 농협으로 가 예치된 돈을 전부 찾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파리로 혼자 올라왔다. 처음 도착한 대도시에서 그는 제법 괜찮은 행운을 잡는다. 전체 부피가 3 세제곱미터 될랑말랑하는 코딱지만한 방을, 감당할 수 있는 월세로 얻게 된 것과 그 월세를 벌 수 있을만한 직장을 갖게 된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조나단은 평생 그 방에서 지낼 수 있었고 평생 그 직장을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조나단은 절대 일신상의 변화없는 평화를 사수해내야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하여 25년이 넘는 세월동안 조나단은 반 나절은 한 건물의 경비원으로서 지내고 반 나절은 자신의 방에서 안락한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동안 변화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조나단은 그야말로 성실한 경비원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 내었으므로 일정한 비율로 돈을 저축할 수 있었다. 조나단에게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면 자신이 반평생을 보낸 이 작은 방을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것, 그래서 죽는 날까지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남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건 불가능한 꿈이 아니었다. 이제 얼마 후면 조나단은 자신의 방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잔금을 모두 치를 수 있었고 그렇게만 된다면 이 세상 어느 것도 자신과 사랑하는 그 방을 떼어놓을 수 없을 터였다.
무변화로 완벽하게 조율된 평화롭고 안정적인 조나단의 일생에 갑자기 엄청난 외란이 들이닥쳤다. 여느때처럼 아침에 일어나 복도끝에 있는 공중화장실로 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될 무언가가 복도의 카펫 위에 앉아 있었다. 번짓수를 잘못 찾아온 그것은 복도의 붉은 카펫을 배설물과 깃털로 온통 더럽히며 반짝이는 눈으로 조나단을 쳐다보고 있었다. 조나단은 비둘기를 증오했다. 황급히 문을 닫고 방으로 다시 들어온 조나단은 엄청난 고민에 휩싸인다. 변화를 혐오하는 조나단에게 비둘기는 너무나 위협적이고 저주스러운 존재였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되는 이 보금자리에 저런 치명적인 흠이 존재한다는 게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조나단은 다시는 자신이 이 방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때는 8월이었고, 조나단은 직장에 나가야 했고, 하지만 복도에서 비둘기와 직접적인 접촉을 하게 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래서 그는 모직 코트를 입고 장화를 신고 모자를 쓴 다음 장갑까지 끼고 방을 나온다.
파리에 올라온 이후 한 번도 흔들림 없던 조나단의 인생에 최대 위기가 닥쳤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던 자신의 방과 헤어지고 더는 갈 곳이 없어진 조나단은 일터와 가까운 곳에 호텔을 잡는다. 호텔의 비용과 자신이 모아둔 돈과 월급을 전부 고려하면 연말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경비원으로서 조나단이 하는 일은 건물 입구에 있는 초소에서 검은 옷을 입고 허리춤에 권총을 차고 단단한 챙과 각이 잡혀있는 모자를 쓴 다음 일정한 각도로 다리를 벌려 서 있거나, 입구에서 초소까지 일정한 속도로 왕복을 하거나, 사장 뢰델 씨가 들어오는 차량이 보이면 철제로 된 문을 열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앞으로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처음으로 뢰델 씨가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평소에 조나단은 사장이 들어오는 것을 보지 않아도 멀리서 그 차량의 엔진소리만 듣고 미리 문을 열어놓곤 했으므로, 오늘의 상실감에 이어 자신에게 치밀어오르는 무능함에 대한 분노로 어찔할 지경이었다. 더이상 자신에게는 아무런 가망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그는 공원으로 갔다. 근처 식당에서 잘 차려진 점심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앞으로는 호텔에서 지내야 했으므로 돈을 아껴야만 했다. 슈퍼에서 먹을거리를 사들고 공원에 가 벤치에 앉아서 먹는 점심은 너무나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제법 행복한 기분까지 가져다 주었다. 그러다 조나단은 문득 거지를 한 명 보게 되었는데 사실 그 거지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으므로 조나단도 처음 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예전의 조나단이라면 자신은 늘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여 일을 해야만 하는데 거지는 사람들의 동정심만으로도 자유롭고 한가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질투를 느끼곤 했다. 그러나 어느날 거지가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전부 볼 수 있는 곳에 앉아 용변을 보는 것을 보고는 거지가 누리는 자유의 질과 자신이 누리는 자유의 질이 현격히 다르며, 앞으로도 자신의 자유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건 조나단의 인생에 아무 변화가 없을거라는 게 보장될 때에만 가능한 것이었다. 지금의 그에겐 그때와 같은 완벽한 평화가 존재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그 거지와 같은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삶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었다.
저녁이 되어 퇴근할 무렵 조나단은 아침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뢰델 씨가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만 듣고도 정문을 열어놓았고 직원들이 전부 퇴근한 후에는 문을 잘 닫았다. 변함없이 평소과 같았던 퇴근에서 다른 점이 있었다면 조나단이 평소에 가던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퇴근을 한다는 것 뿐이었다. 역시 돈을 아껴야 했으므로 먹을 것을 사가지고 호텔 방으로 들어가 먹기로 했다. 조나단은 정어리 한 캔과 빵 한조각과 포도주 등을 먹을 예정이었다. 조나단이 평생 소유할 수 있었던 방보다도 작은 호텔방에서 먹는 저녁은 맛이 기가 막혔다. 그는 정어리 통에 묻어있는 기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빵조각으로 깨끗하게 닦아내어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그러다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자살은 내일 해야겠다고 미룰 정도였다.
새벽에 그는 이상한 꿈을 꾸다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밖은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조나단은 자신이 있어서는 안될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는 어릴 적 부모님이 잡혀가던 시절 숨어있던 광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막 깨어났다고 믿었다. 자신이 군인으로 지낸 일, 결혼을 한 일, 파리에 올라온 일, 경비원으로 지낸 인생 모든 것이 한낱 꿈에 불과한 것만 같았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급히 짐을 챙겨들고 어두운 새벽 거리를 나서 자신의 반려자가 될 방이 있는 건물로 돌아왔다. 천천히 걸어올라가면서 그는 다시 비둘기를 마주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를 했지만 이제와서 뒤돌아설 수 없었다. 갈 데도 없었다. 드디어 자신의 방이 있는 층계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비둘기는 온데간데 없고 거기엔 배설물이나 바람에 흔들리던 깃털의 흔적도 없는 여느때처럼 깨끗한 카펫이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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