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소란한 보통날

gowooni1 2011. 8. 11. 16:58

 

 

 

소란한 보통날은 에쿠니 가오리의 다른 소설들과 비교해서 지나치게 건전하다. 건전함이란 말도 의미심장하다. 정상과는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그녀의 다른 콜렉션에 비해, 소란한 보통날에는 비교적 정상적인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비교적이라는 전제 하를 말한다. 여기에는 그녀가 늘 다루는 불륜도, 동성애도 없어서, 약간 뭐랄까, 에쿠니 가오리식 자극이 적은 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지내는 스무살 여자아이 고토코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흐른다. 딱히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고토코. 그렇다고 인생이 지겹거나 무상하다고 생각하기에는 아직 어린데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도 너무 평화롭다. 결혼해서 따로 나가 살고 있지만 한달에 한번은 얼굴을 볼 수 있는 큰언니 소요, 두 번이나 자살기도를 했을만큼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집안에서 아빠와 함께 유일하게 돈을 벌어오는 번듯한 직장인 둘째언니 시마코, 중학생이나 되었어도 언제까지나 고토코에겐 어린 남동생 리쓰, 과묵하지만 집안의 확실한 중심축인 아빠, 그리고 집안의 모든 공기를 휘어잡고 있는 늘 소녀같은 엄마. 이 여섯 식구가 소란한 보통날의 메인 가족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시집 간 소요 언니가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평화롭던 집안에 작은 파문이 생긴다. 처음부터 소요 언니의 결혼을 반대한 아빠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소요가 집에서 지내든 말든 묵묵히 있지만, 엄마의 말로는, 소요는 결혼해서 쓰게 집안 사람이니까 여기에 있으면 안된다며 소요가 돌아가지 않는 것에 대해 걱정한다. 하지만 엄마 역시 사람이 머물 곳은 마음이 머무는 곳이어야 한다며, 큰 딸이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는 것에 대해 억지로 캐묻지는 않는다. 어느 누구도, 언니가 왜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는 건지에 대해 캐묻지는 않으면서도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요의 마음이 어떠한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모두들 은근히, 지나치게 캐묻는 것이 무례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둘째 언니 시마코에게도 작은 일이 생긴다. 늘 소중한 사람을 데리고 오겠다고 해서 집안 사람들을 긴장시키던 시마코가 이번에도 또 한 번 소중한 사람을 데려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번엔 과연 어떤 남자일지, 이번엔 과연 잘 지내게 될 수 있을지 궁금해하던 중 드디어 그 소중한 사람이 등장했다. 그런데 아뿔싸, 이번엔 여자였다. 집안 사람들은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진다. 자신의 둘째 딸이 혹시 바이섹슈얼이었던가. 그런 충격도 잠시 시마코는 한 번 더 폭탄 선언을 한다. 자신이 데려온 여자의 뱃속에는 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 아이를 자신이 입양해서 키울거란다. 이 침착하고 품위있는 가족은 그런 쓰나미를 이번에도 표정하나 크게 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 외 아빠에게도 작은 사건, 리쓰에게도 작은 사건, 고토코에게도 작은 사건이 하나씩 벌어지면서 이 소소한 가족의 일상이 그려진다. 엄청나게 대단한 스토리의 진전은 원래 에쿠니 가오리식이 아니니, 잔잔하다면 잔잔하고 심심하다면 심심하지만, 역시 그녀만의 분위기는 간직하고 있는 소설이다. 식구들 각자에게 일어났던 사건이 한매듭을 짓고, 마무리는 파문을 일으킨 소요의 사건으로 장식된다. 뱃속에 아이까지 있으면서도 이혼을 강행한 소요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심심한 소란한 보통날에서 작은 긴장의 끈을 제공하기 위해 그녀의 이혼사건을 등장시켰는지는 작가만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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