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잠수복과 나비

gowooni1 2011. 7. 27. 10:40

 

 

 

 

잘 나가던 여성 잡지의 더 잘 나가던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는 그 날도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애인에게 키스를 하는둥 마는둥 조급하게 출근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현관에는 운전사를 대동하고 시승을 하기로 한 BMW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멋진 외제차의 승차감을 제대로 음미도 못하고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회의를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장. 그러는 와중에 오늘 오후 만나기로 한 아들 테오필도 짬짬이 생각한다. 테오필을 데리고 주말에 연극을 보며 멋진 시간을 보내기로 했지만 예정보다 한 시간 넘게 늦어진 회의 때문에 일정이 끝났을 때에는 아들이고 뭐고 그냥 집에 돌아가 잠이나 한숨 푹 잤으면 싶었다.

 

아내와 이별을 하면서 예전 집에 가는 일은 오늘처럼 아들을 만나는 날에나야 간다. 파리에서 한시간 반 떨어진 곳에 도착하니 커다란 배낭을 꾸린 테오필은 한참 지난 약속시간 때문에 부루퉁해져 있었다. 겨우 아들을 달래고 BMW의 운전석에 앉아 목적지로 차를 몰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하고 모든 의식이 저편으로 넘어갈 것 같은 아찔함을 느낀다. 몸상태의 위기감에 반쯤 남은 의식을 가까스로 모아 간호사였던 처제의 집에 도착하고, 그의 상태를 살핀 처제는 즉각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 의식을 잃으면서도 장은 오늘 저녁 보기로 한 연극의 예약을 취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상은 바뀌었다. 앞날 창창하고 건강하고 멋진 남자였던 그의 영혼은 엄청난 잠수복을 입은 것처럼 고개도 못 돌리고 손가락 하나도 꿈쩍 못하는 육체에 갇히고 말았다. 몸을 움직일 수 있기는커녕 입도 못 움직이니 음식도 못 먹고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의사가 장의 오른쪽 눈을 꿰매어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창을 하나 제거하는 데에도 아무런 반항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혼자 속으로 남은 왼쪽 눈마저 꿰매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분노하며 걱정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왼쪽 눈은 살아남았다.

 

그의 증상은 로크드 인 신드롬. 식물인간 상태보다 약간 나은 상태, 의식은 있지만 외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완벽하게 결여되어 있는 것보다 약간 나은 상태였다. 이제 장의 의사소통 수단은 오직 깜박거릴 수 있는 왼쪽 눈꺼풀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의사소통 수단은 최고의 비효율을 자랑했다. 누군가가 알파벳의 한 글자 한 글자를 짚을 때마다 눈을 깜빡이면 사람들은 그 글자를 받아 적는다. 하나하나 겨우 받아 적어 단어를 만들고 문장을 만들어 자신의 의사를 겨우 표현한다. 나중에 알게 된 바 오른쪽 눈꺼풀은 마비로 움직일 수 없어 각막 궤양의 위험 때문에 아예 봉해버렸다는 것이다. 안에는 아직 세상을 볼 수 있는 시력이 남아 있었는데 말이다.

 

그는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들을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었다. 단지 움직일 수 없을 뿐이었다. 너무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자신을 이렇게 불편한 자세로 앉게 한 간호사를 저주하고, 재미도 없는 TV 프로그램을 크게 틀어놓아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소음 때문에 분노하지만 그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없다. 뇌일혈로 그가 쓰러진 나이는 마흔 네 살. 아깝다면 아깝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인 나이이기도 했다. 과거의 기억이라는 소중한 재산을 쌓을 수 있는 나이였고 덕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추억을 곱씹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잠수복과 나비는 오직 알파벳 판과, 깜박이는 장의 왼쪽 눈꺼풀과, 클로드 망드빌이라는 인내심 많은 여성의 조합으로 쓰여진 글이다. 거추장스럽고 말캉거리기만 하는 육체 안에서 장의 기억이라는 소재를 멋진 글로 건져낸 이 수필은 실제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가 새로운 인생을 받아들이는 자세 때문에라도 공감하고 슬퍼하고 연민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갑갑한 잠수복 속에서 장은 1997년 어느 날 그가 그토록 원했는지도 모르는 나비가 되었다. 잠수복과 나비가 출간된 지 일주일 지나던 어느 3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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