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하면 무소유인데, 무소유가 거의 35년 전에 초판된데다 스님의 유언으로 더이상 재판되지 아니하므로 읽어보려해도 그 길이 없었다. 서점에서 간혹 비슷한 표지와 이름의 책을 발견하면 이미 돌아가신 분의 유명세에 걸쳐 판매고를 올리려는 저속한 마케팅 술법에 은근히 화도 치밀었다. 죽음과 함께 글빚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스님의 유언이 역으로 이용되는 것을 보며 차라리 재판을 허용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고도 생각이 들었고, 어쨌거나 무소유가 그렇게 구하기 힘든 책이 되어버려서 섭섭하기도 했다. 그러니 도서관 서가에서라도 발견한 무소유는 고서의 희귀본을 발견한 듯 할 수밖에 없었다.
무소유에 실린 에세이들이 쓰인 시기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이니 1932년에 태어난 스님의 속세 나이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이다. 스님의 글에서 느낄 수 있었던 동시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예전부터 여전했구나, 그런 스님의 시각으로 본 40년 전 한국 사회의 모습이 어떠했구나 확인도 할 수 있어 쏠쏠한 즐거움이 있다. 세상이 싫어선지 신을 만나기 위해서인지 그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법명을 받고 한 번도 다시 돌아오지 않은 사람인데도, 세상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놓지 않고 늘 깨어있는 눈으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은 스님의 마음가짐이 마치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고자 하는 신의 마음을 닮았다고 느끼다가도 수필 곳곳에 녹아있는 깐깐한 비판을 마주할때면 웃음도 나온다. 너무 매끄러운 것보다 살짝 비끄러진 것의 매력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까.
무소유가 그의 다른 단행본보다 유난히 유명한 이유는, 어렴풋한 기억에 무소유에 실린 글 중 하나가 교과서에 실렸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마 난초에 관한 일화였던 듯 한데 내용은 이렇다. 그가 기거하고 있는 방이 하도 적적하여 난을 사다 키웠는데, 이 난이 워낙에 까다로워 어디 갈 때마다 신경을 써주어야 했다는 것이다. 너무 더워도 안되고 추워도 안되며 방 안에 들일 때에도 통풍을 위해 창문을 조금 열어두어야 하니 나그네처럼 훌쩍 떠나 유유자적 다니는 스님의 본능상 난초는 지독한 집착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어느날 난처럼 말이 없는 친구에게 그 분을 선물하고 나자 드디어 소유욕이라는 병에서 벗어난 듯 홀가분 했단다. 3년 간 키운 난초 덕에 집착의 병을 앓고 벗어나 본래무일물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스님이다.
인상 깊은 일화 하나 더. 스님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몇 되지 않는데에도 마하트마 간디가 사후에 남긴 물건들의 목록이라는 것이 너무 간소해서 자신의 욕심이 너무 과하지는 않은가 하고 생각하던 중, 밤손님이 다녀가 그의 시계를 훔쳐갔다. 앞으로도 필요에 의해 사용하게 될 물건이었으니 없어져서 혼란스러운데 물건이 없어졌다고 마음까지 혼돈에 빠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간소한 살림을 했다 해도 남이 보았을 때 탐이 나는 물건이 있었다 하여 부끄러이 여기고는 다시 시내에 시계를 사러 갔다. 시계방에 들렀는데 마침 도둑맞은 시계가 도군과 주인 사이에서 흥정 중이었고, 도군은 말은 하지 않았으나 얼굴을 붉혔다. 시계가 없어졌을 때에는 그 물건이 자신과의 인연을 다했거니 하고 체념했는데 다시 이런 식으로 마주하니 그 인연도 인연이라며 다시 돈을 주고 그 시계를 거두어 왔다. 그가 가지고 있는 소유 관념이란 것이 내 것이 아니고, 잠시 빌린 것, 인연이 되면 빌려 쓰고 인연이 다하면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람의 시간이란 걸 보면 소유욕, 즉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욕망으로 점철된 순간들이다. 땅을 얻고자, 사람을 얻고자, 부를 얻고자, 능력을 얻고자 한다. 그런 욕망이 건전하기만 하면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키게 만든 원동력이므로 부정할 것도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달라서 늘 그 이상을 바라고 얻고자 하니 역사가 그리 깨끗하지만은 않은 이유이다.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것 뿐 아니라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것도 지독한 욕망이다.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갈망이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범위안에서라면 문제될 것도 없는데 그것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서 지독하게 큰 병이 되어 번뇌로 변질되면 그것도 독이다. 어느 정도의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영원한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