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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gowooni1 2011. 8. 3. 07:45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라는 제목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두 가지. 첫째, 이 사람은 아내와 이혼했나? 그렇지 않다면 둘째, 이 남자의 아내는 제목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아내와의 결혼을 '가끔' 후회한다는 남편의 말에, 남편과의 결혼을 '아주 가끔' 만족한다고 응수하는 아내도 결코 만만치 않다. 에필로그의 사연을 넘어서 일단 이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은 저자가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기 보다, 많은 책을 팔아 캠핑카를 사고픈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는 마케팅 차원에서 고려한 제목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저자의 이력은 대충 이러하다. 고려대에서 학사를 마치고 독일이 통일되기 전후인 시기 베를린으로 유학가 박사까지 마쳤다. 동양인이라는 핸디를 물리치고 완벽한 독일어를 구사하며 그 쪽 강단에서 12년을 강의하다 온 저자는 고국으로 돌아와 명지대학교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자신의 이력을 이렇게 자기 입으로 강조하는-저자는 독일 대학 강단에서 강의하는 게 한국인으로서 쉬운 일인 줄 아느냐고 독자들에게 특히 강조한다-이유는, 자신이 재미있게 잘 놀자고 말하는 강의의 내용이 너무 가벼워서 간혹 사람들이 '경력은 보잘것 없는데 말빨로 먹고 사는 놈'으로 쳐다보는 것이 너무 짜증나기 때문이란다.

 

확실히 김정운 교수의 글은 지식와 권위로 무장한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그게 어쨌단 말인가, 라는 물음으로 시종 일관하는 그는 사회적 지위 따위는 자신의 행복을 결코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높은 자리를 꿰차고 있다고 무게 있어 보이려다 재미없는 사람으로 전락해버린 사람들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사회적 지위라는 것은 자신의 본질을 나타내주는 것이 아니라 금방 잃어버릴 성질의 것이기도 해서 거기에 너무 의존하다가 마지막 죽는 순간 '난 왜 이렇게 재미없게 살았지' 하고 자책하며 죽을지도 모른단다. 그는 아침형 인간이 질색이라고 아예 대놓고 말한다. 남한의 새마을 운동이나 북한의 천리마 운동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것 없는 그 '아침형 인간'은 개도국을 벗어난 21세기 한국의 맥락에서 벗어나도 너무 벗어났다는 거다. 근면과 성실이라는 미덕이 빛을 발했던 70년대는 재미와 행복을 미덕으로 여기는 2010년대와 맞지 않는단다.

 

재미와 행복.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몰입해서 신나게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런 행위를 놀이라고 부르고, 그 놀이가 다소 생산적이기까지 하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살 것인가,라 자문해 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 씩 내려본 결론은 이것일 거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것. 그렇기 위해서 우리는 자기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신나고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정신없이 빠져들 수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김정운 교수는 글을 쓰고 있을 때가 그렇단다. 자신이 쓴 글을 새벽에라도 벌떡 일어나 보고 있으면 내가 정말 이 글을 썼는지 자문할 정도로 훌륭해 가슴이 벅차다고까지 하는데, 대목을 읽을 때는 좀 우습기도 하지만 과연 그래서 그런가 그의 글은 읽는 이도 재미있다. 사회과학책인데도 읽다 풉, 하는 대목이 자주 나오는 이유는 저자가 재미있게 살기 때문이고 자신이 즐거워서 쓴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 건드리지 마' 포스로 거리를 누비는 한국인들의 심리를 읽고 어째서 그렇게 재미없게 인생을 사는지 사회심리학적으로 원인규명해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는 김정운 교수는 시종일관 인생은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삶보다는 열심히 사는 삶이 미덕이었던 기존 세대들과 시대를 공유하는 우리들로서는 가끔 너무 재미있기만 한 삶에서 과연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하고 자책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지 말란다. 자신의 삶에서 즐거웠던 일을 먼저 재미있게 풀어낸 다음 그 에피소드 속에서 보편적인 심리적 분석을 통해 독자의 감탄을 얻어내는 그의 텍스트를 보면 역시 학자구나 싶기도 하고, 참 대중적으로 잘 썼다 싶어 또 감탄도 한다.

 

감탄, 이것도 그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미덕이다. 그런데 가끔 독자에게 너무 감탄을 주려다가 나온 직설적인 문구들에 소송당하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되는 장들이 있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라고 대답한 한 유명한 등산가를 보고 또라이라고 말하는 저자다-하지만 뭐 그거야 저자의 사정이고, 독자인 우리들은 그냥 감탄해주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