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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gowooni1 2011. 5. 15. 11:36

 

 

 

 

장하준은 말한다. 지금의 상황이 최선은 아니라고, 우리가 지금이 최선이라고 믿는 것은 이 시대 지배계층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에 세뇌되었을 뿐이라고 말이다. 한술 더 떠, 지금의 상황은 나쁘지만 이 상태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다른 것에 비해 지금이 그나마 낫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그가 말하는 이 상황이라는 것은 바로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판치고 있는 21세기의 모습이다. 그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는 엄청나게 나쁘고 모순되었으며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이 많은 체계이지만, 그나마 이것이 다른 것들에 비해서는 낫고 또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증빙되었기 때문에 이 세계에 수용되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산업혁명 이후 발생한 여러 시스템 들 중에서 가장 강력했다. 그나마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은 큰 두 줄기 중 나머지 하나인 공산주의까지 간단히 무너뜨리고 살아남은 견고한 생명력까지 지녔다. 이것은 일찌감치 자신을 떠받든 신도들에게 무척이나 관대하기까지 해서, 신봉자나 신봉국가의 역사가 길면 길수록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고 더불어 더 많은 신도들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뒤늦게 합류한 신도들은 기존 신도들에게 웬만한 노력가지고는 이길 수 없다는 점이고, 기존 신도들은 뒤늦게 합류한 신도들 또는 여전히 회의를 가지고 있는 자들의 노동력에서 자신들의 부를 창출하는 구조라는 점이며,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구조가 옳다고 믿어버린 상황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마저 자신들이 그 체계를 더 열심히 믿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피지배계급에 머물고 있다고 믿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멋진 신세계라면 모든 사람들이 같은 사고방식과 같은 이념을 가지고 갈등 없이 평화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갈등이 나쁜가? 갈등은 더 나은 상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치이다. 갈등없는 독재는 폭발로 멸하고 갈등 많았던 로마나 신라는 천년을 구가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수용할 수 있는 사회라면 보다 나은 체계를 생각해볼 가능성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미국식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마치 우리 토종의 경제적 시스템이라고 생각될만큼 강력하게 세뇌된 한국 자본주의 구조에서 큰정부를 일관되게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구별된다. 확실히 지배계급의 질타와 배척과 공격을 한 몸에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들어오는 공격을 견고한 주장으로 어렵잖게 물리친다.

 

그의 전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이념이 뭔지 파악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장하준은 자본주의를 싫어하고, 큰 정부를 좋아하며, 탈산업화 사회를 마치 한 물 간 사회로 취급하는 현시대의 시각에 코웃음을 치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자본주의를 싫어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 때문에 부의 불평등과 더불어 이 시대 새로운 문제점들이 부상하고 있으니 작은 정부의 환상에서 깨어나 큰 정부,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이 21세기에 요구되는 정부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최신의 것을 더 크고 좋게 보는 우리의 맹목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지식경제의 환상을 무너뜨리고 아직도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실물 경제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 4의 물결이 지식경제임을 부정한다기보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가 이미 도래했다는 착각을 하지 말고 제조업을 경시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가 같은 템포로 발전하지 못할 때 나타났던 것이 바로 2008년도의 세계적 금융위기, 우리 같은 경우에는 97년도 금융위기였다.

 

큰 줄기는 결국 하나다. 자유 시장에 맡기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제 정신 차리고 정부의 역할을 키워 좀 안정되고 건강한 경제를 만들어 나가자. 사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자유시장이라는 것도 잘 살펴보면 결코 자유 시장이 아니다. 정부가 내세운 각종 규제가 너무 익숙해져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인데 우리는 자유로운 체계 속에 있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부의 불평등이 심화된 지금 상황에서 가진 자들에게 불리한 체계를 정부가 하나 둘 씩 세울수록 매스컴과 언론 플레이에 놀아나 정부가 권력을 남용한다고 믿게 만드는 이런 시스템에서 벗어나 비판적인 안목을 가질 것을 권고한다. 정부가 강력해지고 사회가 안정적이 되면 사람들은 실업의 공포에서 벗어나 여유로워지고 시장도 무조건적인 보호주의를 반포하지 않을 것이며 궁극적으로 변화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장하준은 개인적으로 스웨덴의 높은 누진 세율을 좋아한다고 하니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라는 것이 무언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아직 미국식 자본주의에 지배계급은 물론 온 국민이 꽁꽁 얽매여 있는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더 나은 한국식 자본주의의 모습을 그려나가야 할 지 생각해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 개념이 만족스럽지 않은 가진 자들의 한국 정부의 현 주소를 생각해보면, 체계나 이념이 받아들여지려면 적절한 시기도 필요함을 묵묵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