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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원자

gowooni1 2011. 1. 30. 12:44

 

 

 

 

사람은 전부 다르다. 스타일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며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그리고 다르다는 차이가 만들어내는 다양함 덕분에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회는 금방 패망했고 다름을 존중한 사회는 오랜 시간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존속할 수 있었다. 다른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마음을 열고 좋은 것은 취할 자세를 교육 받았다. 하지만 역으로 잘 생각해보면, 다른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강조는 인간의 본성 속에, 나와는 다른 것을 거부하려는 마음이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행위는 모방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는 부모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것을 모방하면서 자신을 형성해나간다. 동일한 시간을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부부는 습관마저도 비슷하다. 아직 자아가 확고하게 서 있지 않은 사람일수록 주변 사람을 따라하는 경향은 더욱 강해지지만, 사실 자아가 매우 강한 사람이라도 옆사람 따라하기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사회성은 인간의 본성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습성이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자신을 발견하면 누구든 얼마만큼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남들과 비슷해지려는 속성은 불안하기 않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어막이다.

 

인간의 사회성은 집단적 광기와 결합할 때 매우 위험해 질 수 있다. 나와 다른 종교를 믿는 자들을 종종 대학살한 중세유럽이나 나치의 유태인 학살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사회성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 것도 없다. 남들과 다른 의견을 내면 비정상으로 오해받거나 생명까지 위협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인간은 전부 다르고 존엄하며 개성을 가진 훌륭한 소우주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집단적 본성은 다시 집단적 광기와 결합될 때 역사적 전철을 밟을 것이다. 사회성이란 본능 앞에서 개성이라는 것은 보잘것 없는 듯하다.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나야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매슬로우의 5단계를 떠올리면 된다.

 

마크 뷰캐넌은 이런 인간을 원자라고 보았다. 모든 물질을 이루는 기본이 원자이듯, 이 사회를 이루는 기본인 인간을 사회적 원자라고 명명했다. 원자가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느냐에 따라 그 물질의 화학적 성향이 달라지는 것처럼 인간이 사회속에서 어떤식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한 사회의 성향이 좌우된다고 보는 개념이다. 인간 하나하나를 보면 전부 개성이 강해서 예측불허하지만 전체를 두고 보았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이 역시 사회성이란 본능 때문에 예측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인간을 사회적 원자로 보는 관점이 개개인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형태라고 발끈할 필요는 없다. 단지 인간 사회를 좀 더 단순화시켜서 예측 가능하게 생각하자는 일종의 편의적 관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뷰캐넌은 인간이 어째서 히틀러 같은 절대 악에 동조했는지, 왜 5퍼센트의 인구가 95퍼센트의 부를 차지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딱히 명쾌한 답을 기대하려하지 말고 사회적 원자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을 듣는다는 기분으로 보면 좋다. 답을 안다고 해서 개선이 가능한 일이 아니면 그것이 답이라 하더라도 답이라는 기분은 별로 들지 않는 법이다. 어쨌거나 여기서 중요한 건 사람 하나하나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행동하는 패턴이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