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카지모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인 에텔을 보고 한 눈에 반한다. 에피판이라는 제대로 된 이름보다도 빅토르 위고가 창조해 낸 별명이 훨씬 어울리는 카지모도는 너무 너무 너무 추해서, 보통이라면 에텔 같은 최고의 미녀 배우를 만날 기회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예술 영화를 촬영하는 감독이 낸 못생긴 배우 캐스팅을 원하는 영화 촬영장이라는 무대가 마련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스물 아홉 해를 살아 오면서 어디서든 외면되던 카지모도는 자신보다 더 이상 못생긴 사람이 없음이 확실한데도 못생긴 배우 모집 현장에서 거절 당한다. 영화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못생긴 배우를 구하는 것이지 공포감을 심어줄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오. 거기에서 성질을 부린 카지모도가 얼굴을 한 대 얻어맞고 뒤동그라쳐진 현장에 막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에텔이 구원의 손길로 다가온다. 이렇게 사람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다니요. 그 말에 카지모도는 속으로 외친다. 원래 이랬어요. 아니, 지금은 피가 그나마 얼굴을 가려줘 보통으로 보이는 거에요.
생기도 없고 고만고만한 인형같은 얼굴을 한 모델들 보다 훨씬 아름다운 에텔에게는 일종의 후광까지 서려 있었으니 카지모도는 자신이 에텔에게 반하지 않을 이유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기는커녕 에텔에 대한 사랑을 정당화하기 위한 모든 논리를 갖다 붙인다.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못생긴 남자로 태어날 때부터 아름다움을 박탈당했으니 적어도 사랑만큼은 최고의 것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하며 우아한 에텔만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이라는 게 그의 대표적인 논리였다. 하지만 추남은 자신의 한계를 본능적으로 알았다. 자신의 사랑고백을 하게 되면 그나마 친구로서 얻게 된 위치마저도 상실하고 말 것이었다. 그는 11개월을 매일같이 에텔의 친구이자 최측근으로 살아가는 혜택을, 그 아름다운 얼굴을 한없이 바라보고 그 나긋한 목소리와 웃음소리를 한없이 들을 수 있는 권리를 마음껏 누렸다. 카지모도는 비록 자신이 사랑 고백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연인이라는 것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미녀의 최측근은 자신이 모시는 여신에게 다른 남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우정이라는 이름 하에 알게 된다. 에텔은 카지모도에게, 자신에 최근에 사랑에 빠졌다며 그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도와달라고까지 말했다. 카지모도는 충격을 받는다. 추한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처럼 혐오하지 않고 가까이 지내주었던 에텔조차도 결국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미남에다가 천재 화가로서 한창 주가를 날리고 있는 허영 덩어리 남자였다니. 모든 사람이 항상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기 때문에 한 번도 남의 마음에 들려고 애써본 적이 없는 그런 남자에게 마음에 들려고 고군분투하는 자신의 연인을 보면서 카지모도는 배신감과 질투에 휩싸이지만, 정작 본인은 시라노가 되기로 작전상 후퇴를 선언한다. 에텔이 미남 천재 화가에게 모진 대접을 받고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시라노는 미남의 태도가 마음과는 다를 거라고, 사실 그는 진심으로 너를 아끼고 있다고 거짓을 늘어놓으며 미녀를 위로한다. 그러면 미녀는 충실한 카지모도의 말에 넘어가 미남에 대해 섭섭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고 다시 그에게로 달려간다.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더이상 상황을 견디지 못한 카지모도는 에텔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쯤 카지모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추한 모델로서 한창 국제적으로 인기를 얻고 그 명성에 힙입어 미스 유니버시티 대회 심사위원으로 초청을 받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렇기 떄문에 대회가 열리는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얻는 것 정도는 대수롭지도 않았다. 그는 에텔에게 당분간 이별을 선언하며 일본행 비행기에 오른다. 일본에 다녀오는 며칠 동안 엄청난 팩스 공세로 미친듯 연서를 날린 카지모도. 그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그도 예상했지만 가장 친한 친구로서의 위치는 상실되었고 에텔의 눈에 마저도 가장 추하고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추물로 전락해버렸다. 카지모도는 에텔에게, 너도 보통 다른 여자들과 똑같다고, 내면의 아름다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떠들어 놓고서는 결국 미남과 사랑에 빠져버리는 에텔도 모순 덩어리라고 외치지만, 에텔 역시 차분하게 응수한다. 너야말로 진정함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예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사랑하게 된 것 아니냐. 더 이상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은 카지모도는 마지막 작별의 입맞춤을 요구하고 거기에 기꺼이 응하기는 하나 추물의 얼굴을 보고싶지 않아 눈을 감은 에텔의 옆구리를 깊숙히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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