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쪽 자락 산동네에 태어나 살고 있는 딱부리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새 사람이 되어 오겠다고 어딘가로 끌려가 소식이 없는 아빠 대신 시장에 앉아 야채를 떼다 파는 엄마와 함께 지내는 중이었다. 열 네살이라는 나이보다 커보이는 덩치 때문에 그래도 밥값하려 드는 딱부리였고 동네에서는 싸움 깨나 하며 나름 실세를 장악했다. 딱히 잘 먹는 것도 아니고 월마다 내야하는 방값 때문에 애를 써야 하기는 했어도 그래도 단단한 지붕 덮인 집 아래에서 밥 굶지 않고 사람답게 살 수는 있던 살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얼굴 한 쪽이 푸른 반점으로 뒤덮인 아수라 백작이 나타나 엄마에게 새로운 삶을 제안했다. 돌아오지도 않을 남편 기다리면서 벅찬 월세 감당해야 하는 생활 그만 두고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서 함께 살자는 것이었다. 그가 있는 곳으로 가면 내집이 생기니 매달 내는 방값 걱정안해도 되고 노동은 고되더라도 지금 버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쥘 수 있다며,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딱부리에게도 엄마 도와 함께 일하면 금방 먹고 살만해 질거라고 이야기했다. 늘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하던 녀석에게 아예 대놓고 두살 더 올려 사람들에게 말하고 일을 하라고 했고, 그것은 딱부리의 내심에도 맞는 처사였다. 모자는 고작 하룻밤 고민을 하고 곧장 아수라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쓰레기차를 얻어타고 들어간 아수라의 본거지는 바로 꽃섬이었다. 이름만 예뻤지 꽃섬은 도시의 온갖 쓰레기들이 버려지는 거대한 쓰레기 섬이었다. 쓰레기에서도 분명 돈 될만한 것들은 있기 마련이었고 생명력 강한 인간들은 이 섬에 기생하여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새벽에 한차례 들어오는 도심의 쓰레기들과 오후에 또 한차례 들어오는 주택가의 쓰레기 더미에서, 권리금을 낸 일선들이 쓰레기 산을 한번 훑고 내려오면 돈 없는 이선들이 다시 한번 훑으며 돈 될만한 것들을 건져 올렸다. 골판지, 종이, 플라스틱, 고철, 병, 옷가지에서부터 유통기한이 지난 소시지, 과자, 냉동고기, 밥덩이 등등을 건지며 폐품들은 팔고 먹을 것은 먹어치웠다. 꽃섬에 들어가 처음으로 폐품을 돈으로 바꾸던 날, 딱부리의 엄마는 시장판에서 벌던 것보다 훨씬 많이 벌었다고 즐거워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한턱 쏘았다.
딱부리와 엄마는 아수라의 집 옆에 거주지를 꾸렸다. 꽃섬의 오두막집이란 제대로 된 벽돌로 올린 그런 집이 아니라, 주변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비닐, 스티로폼, 플라스틱 장판, 각목들로 대충 땅고르고 지어낸 움막 같은 곳이었다. 월세 때문에 걱정해야 했지만 그래도 바람 든든하게 막아주는 사람 사는 집에서 살다 온 딱부리였는데, 자리는 자리여도 코를 찌르는 냄새가 한시도 떠나지 않는 그 곳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도무지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별다른 불평불만 꺼내지 않고 꼬박꼬박 새벽같이 일어나 엄마와 폐품을 수거하며 열심히 지냈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새벽에 기분이 이상해서 눈을 떠보니 당연히 있어야 할 엄마는 한 방에 없고 아수라의 아들인 멍청한 땜통이 자고 있었다. 언젠가 땜통이 말했던대로 아수라와 엄마는 '붙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홧김에 칼을 들고 아수라의 방으로 쳐들어갔다가 한방 먹어 뒤로 자빠진 것도 억울한데 어둠 속에서 엄마의 목소리까지 들은 딱부리는 그 길로 동네를 벗어나 산으로 내달았다.
딱부리가 걱정되어 뒤따라온 땜통과 함께 그들은 빼빼엄마를 찾아간다. 빼빼엄마는 꽃섬에서 조금 떨어진 집에 살고 있는 만물상 할아버지의 딸로 나이는 서른즈음 되었고 수없이 많은 강아지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난지도에 버려지는 쓰레기처럼 사람들에게 버려진 불구의 강아지들은 빼빼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알게 된 사실은 빼빼엄마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이었다. 정신이 들락날락하는 빼빼엄마는 발작을 한번 일으키면 낮은 목소리를 내면서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는데 그때에는 아무나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듯했고 그런 일에 이미 익숙해진 땜통은 아무렇지 않았어도 딱부리에게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꽃섬에 와 처음으로 가장 재미있는 날을 보낸 딱부리는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 발견에 흥겨워 아수라와 엄마를 용서해주기로 했다.
귀신을 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땜통과 빼빼엄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딱부리의 눈에도 조금씩 그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멀리서는 파란 불빛처럼 보이다가 가까이 다가오면 검은 그림자도 가진 사람의 형상으로 다가왔다. 원래 난초와 지초가 사방에 날리는 아름다운 꽃섬이었던 시절 살았던 귀신 가족들은 아직도 쓰레기더미에서 먹을 것을 건지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었고, 땜통과 빼빼엄마는 그들을 박하게 대하지 않았다. 메밀묵을 먹고 싶다는 김서방네 가족의 원도 들어주고 막걸리도 사다주고 하는 동안 정이 들어서, 딱부리도 그들을 무서워하기 보다 은근 그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날 땜통이 만원짜리 뭉치들이 들어있는 검은 봉투를 가지고 들어왔다. 김서방네 막내 아들이 쓰레기 더미 안에 있는 현금뭉치 위치를 알려주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세상 살아본 경험이 좀 더 있는 딱부리인지라 패물은 섣불리 팔다가 장물에 걸릴 위험이 있으므로 만물상 할아버지에게 주기로 했고 현금은 장판을 드러내 땅을 파내 몰래 숨겨두었다. 그리고 딱 백만원만 꺼내서 땜통과 함께 읍내 나들이 모험도 했다.
세상에서 버려지던 것들이 모두 모이는 곳에서, 더 이상 세상에 설 곳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긴 해도, 어떻게든 살아가던 꽃섬에 조금씩 재앙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술마시고 금방 자제력을 잃곤 하던 아수라가 역시 술김에 사람을 찌르고 구치소로 가고, 딱부리와 그나마 동등하게 친구 먹었던 두더지의 형이 쓰레기 더미에 깔려 하반신을 잃는다. 꽁꽁 얼었던 날씨가 풀리는 어느 이른 봄날, 언 것이 녹아내리고 부패하기 시작한 쓰레기 사이에서 나오는 가스 때문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하고 순식간에 조립식 오두막 수십채가 불에 타 사라진다. 애초에 불이 좋아하는 재질들로만 지어진 집들이었다. 엄마와 딱부리와 함께 불을 피하던 중 땜통은 슈퍼 마리오 게임기를 건지러 다시 들어가다가 질식사하고 땜통이 주워 들고 왔던 방바닥의 현금 뭉치들도 불과 함께 연기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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