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대 뉴욕. 상류층 가문 자제인 뉴랜드 아처는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계층의 비슷한 부류,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보다 더 나은 가문의 예쁘고 젊은 여성 메이 웰랜드와 약혼을 했기 때문이다. 메이는 이제 막 스물을 넘은 여자로 그 나이 대의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 이렇다 할 개성이나 매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뉴랜드는 그녀야말로 자신의 아내로는 이상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깨어있지 않은 생각은 자신을 충실히 따르는 그녀의 태도로 보았을 때 어느 정도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았고, 아름답기만 한 외모는 특출나지 않은 개성을 충분히 커버했다. 아처는 메이가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으며 그런 아내와 함께할 미래, 보장된 미래야말로 늘 생각해왔던 삶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믿었다.
올렌스카 백작부인의 등장은 굳건했던 아처의 심지를 우습게 만들어 버렸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엘런이 올렌스키 백작과 결혼하면서 유럽으로 가 버린 이후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올렌스카 백작부인이 되어 돌아온 엘런의 등장은 아처는 물론 뉴욕 상류층 일대에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온 엘런의 진짜 목적은 올렌스카 백작부인의 타이틀을 떼어버리는 것, 즉 이혼이었던 것이다.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작가, 배우, 보헤미안 등 많은 사람들과 폭넓은 교제를 해 온 엘런 올렌스카는 보수적인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있어 위협적인 존재였다. 만약 엘런의 이혼을 용인하게 되면 그들은 자신들이 쌓아올린 보수적인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구멍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있어 이혼은 절대악이자 그들 세계의 고상한 성을 무너뜨리려는 폭탄과 같았고, 그런 이혼을 생각하는 '열린' 엘런은 '닫힌' 그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올렌스카 백작부인이 가지고 있는 든든한 방패는 그녀가 웰랜드 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메이의 사촌이기도 한 엘런이었으니 메이와 약혼하게 될 아처와는 미래의 친척이 되는 셈이었고, 그런 웰랜드 가 사람들은 뉴랜드 아처에게 가족의 일원이 될 시험을 제공한다. 변호사인 그에게 가족으로 인정받기 위해 던져진 과제는 엘런의 이혼 생각을 없애는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그런 임무가 자신에게 부여된 것에 분개하지만, 올렌스키 백작과 엘런이 주고 받은 편지들의 내용을 보고 나서 오히려 그 일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은 것에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아처는 엘런에게 백작과 이혼을 하게 되면 이 사회에서 배척을 당하게 될 것이고 이혼녀라는 불명예만 달 뿐이니, 함께 살지 않는 이 상태에서 백작부인의 타이틀을 유지하는 편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훨씬 유익할 것이라고 설득을 한다. 하지만 그런 사이에 아처는 엘런에게 반하고 만다.
엘런은 메이와 달랐다. 기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가치관을 그대로 답습하는 메이에게서 아처는 가끔씩 갑갑함을 느꼈다. 메이는 사회가 주입시킨 가치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 낸 인생관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옳게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철저히 믿는 관습의 여성이었다. 메이는 뉴욕 상류층 사회라는 공장에서 일괄적으로 생산해내는 무수한 양갓집 규슈였다. 하지만 엘런은 자신만의 생각이라는 것, 취향이라는 것이 있는 여성이었고 인습이나 관습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었다. 유럽식 생활방식을 소유한 엘런이 뉴욕 생활방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녀를 받아들여주어야 하는 사회에서 죄악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엘런은 상류층이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고 다녔고, 이상하게도 이런 모습이 아처의 마음을 더욱 애끓게 만들었다.
올렌스카 백작부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겨우 확신하게 되었을때 아처는 메이와 결혼을 하고 이제 관계는 삼각으로 이어진다. 메이는 매우 교육을 잘 받은 교양있는 여성이었다. 아처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이미 떠나 엘런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경거망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처가 엘런과 연결되기 위한 일련의 행동들을 교묘한 수를 써 방해를 하였고 이런 과정에서 아처는 메이가 그녀의 어머니와 점점 닮아간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메이는 자신의 기분에 상관없이 늘 아처 앞에서 쾌활하고 명랑한 아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기분이 저조할 때나 피곤할 때에도 마지막까지 남은 힘을 그러모아 애써 상냥한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아처는 그럴수록 위선적인 결혼생활에 질려간다. 메이는 아직도 너무나 젊으니 이런 거짓된 생활을 몇 십년이나 반복해서 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기까지 하다.
1870년대의 뉴욕은 결코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고 엘런 올렌스카는 자신이 좀 더 자유롭게 숨쉬며 살아갈 수 있는 곳인 파리를 향해 떠난다. 가장 원하던 것을 잡을만큼의 용기가 없던 아처는 결국 자신이 늘 생각하던 생활방식을 이어가며 산다. 엘런을 몰랐을 때의 아처라면 행복했을 삶이었을지도 모를 메이와의 결혼생활도 메이가 30여년 후 죽음으로써 끝이 나고, 자신의 첫째 아들과 함께 떠난 파리 여행에서 드디어 엘런과 재회할 기회를 얻는다. 올렌스키 백작도 죽고 메이도 죽은 상황, 더 이상 이혼이나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아처가 택한 선택은 그 둘 사이에 건너지 못한 것이 관습이나 오랜 시간 외에 또 무엇인가가 있음을 생각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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