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배고픔의 자서전 ; 아멜리 노통브

gowooni1 2011. 4. 23. 12:13

 

 

 

단순히 서사만 따라가는 이야기는 남는 것이 없어 허무하고, 단순히 자기의 감회나 깨달음만 적은 글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거나 자아도취적이어서 재미가 없으니, 결론은 흥미진진한 적당한 서사에 자신이 보낸 인생을 기반으로 얻은 생각이 버무려져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그나마 중립적이다. 재미도 있고 가슴 깊이 와닿는 감동도 있고.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크게 봤을 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완전히 자신의 상상에서 나온 허구적 이야기와 거의 자전적이라 할 수 있을만큼 실명도 바꾸지 않은 이야기. 소설이라는 것은 작가의 온전한 상상력에서 나와야만 한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전자가 더 가치있게 느껴지겠지만, 역시 나로서는 후자가 더 재미있다. 읽는 즐거움의 격이 다른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아멜리 노통브가 지금껏 발표해 온 작품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눠볼 수는 있겠지만 양쪽 다 굉장한 흡인력으로 초반부터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는다는 것에는 의심할 바 없다. 그녀의 작품에 관심을 갖던 독자라면 그녀가 이런 작품관을 가지게 된 배경, 즉 그녀가 살아온 환경이나 겪은 일들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느끼게 될텐데 그렇다면 [배고픔의 자서전]은 그 문제에 대해 거의 완벽한 답을 제시해준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소설이라는 이름을 아예 빼버렸다. 그럴만 하다. 이건 그녀가 살아왔던 유년시절에 대한 자화상이다. 어느 정도의 허구가 들어가야 소설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규정이 존재한다면 배고픔의 자서전은 장편소설이라는 명칭을 얻는데 조금 위태로울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를 소설의 범주에 두고 재미있게 읽을 작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보면 지금껏 그녀 작품의 첫날개에서 봐왔던 단순한 프로필들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음을 느낄 것이다. 대략적인 그녀의 프로필은 대충 이렇다. 벨기에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태어나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성장했다. 얼핏 봤을 때는 좀 특이한 성장 이력을 가졌겠거니 싶은데, 그녀가 직접 말하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듣고 있다보면 역시 그냥 다른 것이 아니었구나, 싶다. 그녀가 타인보다 엄청난 감수성과 천재적 발작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게 타고나면서 다른 천성이라면 천성이겠지만 그런 천성과 독특한 성장 배경이 결합하여 아멜리 노통브라는 작가가 자라났음을 알게 된다. 그녀가 만들어 낸 작가적 세계관에서 그녀만의 독특한 색을 느낀 독자라면 배고픔의 자서전에선는 그 색이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일본 고베에서 태어난 아멜리는 자신의 오빠, 누나와는 다르게 일본인 유치원에 입학하게 된다.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을 이미 어릴적부터 느끼고 있던 그녀는 언니 오빠처럼 미국인 유치원에 들어가지 않게 된 것이 오히려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벨기에 인의 피를 가진 아멜리는 어디서든 자신의 정체성을 한 군데에 속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기질을 타고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일본어를 했지만 일본인이 되기에는 뼛속 깊은 뿌리가 부족했던 아멜리는 자신을 일본인으로도 벨기에인으로도 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기에는 아멜리의 자아는 너무 강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정하기에 이른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보고 해석하고 느낀 그녀는 자기보다 더 옳은 기준이 없다는 판단 하에 자신을 신격화 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일본인 유치원생들이 작당하고 옷을 벗겨 이지메하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런 자신의 상황에 대한 자기연민 하나 느끼지 못하고 하나의 사건으로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다섯 살 때까지 일본에서 살던 아멜리는 이제 아버지의 부임지에 따라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여정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중국으로 간다. 아름답고 안전하고 자유롭던 일본에서 가난하고 부자유스럽고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는 공산주의 치하의 중국은 그녀를 더욱 일본에 대한 추억에 빠지도록 만들어 버린다. 이제 아멜리는 더욱 대단한 나라들을 전전한다. 온전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방글라데시에서 비로소 자신들이 특권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고, 말도 안되는 탄압 속에서도 사람은 희망을 잃지 않으며 살아간다는 것을 라오스에서 느낀다. 너무나 못사는 나라에서는 그들이 타인의 눈에 비춰진다는 자체가 위협적인 일이라서 아멜리와 그녀의 언니 쥘리에트는 집에 처박히는 인생을 살게 된다. 집에 처박혀 알코올에 중독되고 물에 중독되고 초콜릿에 중독되고, 드디어 책에 중독된다. 할 일이 너무 없던 그 나라들에서 그녀들은 책에 빠지기 시작했다. 작가들이 언젠가 한 번은 활자 중독증에 걸리게 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면 여기에 아멜리라는 작가가 겪은 통과의례가 있다.

 

배고픔의 자서전은 그녀 유년기의 자서전이지만 형용사의 선택 이유는 책을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자신을 규정하는 단 하나의 형용사를 배고픔이라고 말한다. 인생에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병은 불행이고 그 불행을 더욱 촉구하는 것은 배고픔이다. 여기서 말하는 배고픔이라는 것을 단순히 신체적 허기짐으로 해석하면 안된다. 물론 신체적 배고픔도 포함은 될 수 있겠지만 정신적 공허함을 채우고자 하는 배고픔이라고 보아야 더 포괄적이다. 그녀가 갖고 태어난 영혼의 허기짐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그녀의 인생은 하나의 거대한 열정으로 보이기도 하고 관점에 따라선 미친듯한 배고픔으로 보이기도 하다. 유년기의 아멜리에 대한 이야기를 대충 파악했는데 그 이후가 궁금하다면 이제 [아담도 이브도 없는]을 읽고 이후도 궁금하면 [두려움과 떨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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