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너를 사랑한다는 건 Kiss & Tell

gowooni1 2011. 4. 30. 19:36

 

 

 

 

자전적인 글을 쓰는데 빠질 수 없는 작가가 알랭 드 보통인데, 그가 얼마나 많은 연애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네 번 이상을 했을 거라고는 추측할 수 있다. 작가로서의 초창기에 자신의 경험에 입각한 사랑 3부작-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 of Love), 우리는 사랑일까(The Romantic Movement), 너를 사랑한다는 건(Kiss & Tell)-에 각각의 연애담들이 등장하고, 그가 쓴 다른 에세이들의 전후 문맥들을 파악하면 한 명 이상의 애인이 있는 것으로 보이니 어쨌든 연애 불능자는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그를 사귄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그를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다고 비난하는 걸 보니 사랑을 하기에는 꽤 많은 문제가 있었나보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들 속에서 얻은 경험으로 소재를 찾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생각하는 사유의 깊이와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 그것을 다양한 비유로 표현할 수 있는 박식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의 글은 아무 생각없이 술술 읽히는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제공하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집중이라는 정신적 자세와 일반적 현실이 지적 능력의 고차원으로 탈바꿈하는 즐거움을 누릴 마음의 자세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는 독자의 눈높이를 고려하는 작가라기보다 자신의 눈높이를 먼저 고려하는 나르시스트이다.

 

사귀던 여자에게 '너는 너 자신만 생각해'라는 비난을 받으며 이별을 감내해야 했던 '나'는 자기 성찰을 통해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연애를 하리라 마음을 먹는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를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생각 패턴을 정립했는데 그 첫번째 단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한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 그가 고안해낸 방법은 '전기'쓰기 였다. 전기를 쓰면서 상대방에 대해 완벽히 알아가고 상대와 나 사이에 등장하는 수많은 반응의 패턴을 정립하면서 이해하겠다는 생각은 이상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그의 삶에 등장한 새로운 여자, 즉 새로 쓰게 될 전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사벨이었다.

 

이사벨을 그가 만난 다른 여자들과 비교하려는 그런 의도는 없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의 패턴을 통해 그는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을 정립했었고 그건 이사벨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는 과거의 사람들이 세워준 기준을 토대로 상대방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일요일 오후를 함께 보내며 서로를 파악하는 기회가 몇 주를 거쳐 반복될수록 상대방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고 상대방의 반응에 익숙해진다. 전기를 쓰는데 빠질 수 없는 결정적인 요소는 현재 이 사람을 만드는 데 소요되었던 과거의 시간들이다. 그는 이사벨과 보내는 시간 속에서 별 대단할 것도 없는 사건들이 연상시킨 흥미로운 그녀의 과거들에 대한 지식을 쌓는다. 사귀는 사람의 과거란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과거에는 더더욱 관심을 갖지 않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타인에게는 전혀 무관심한 완전한 나르시시스트는 아닌 듯하다.

 

이사벨과 그는 제법 서로에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했다.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공감이라는 보다 고차원적인 동질성, 너와 나는 같은 부류라고 느끼고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상태로 넘어갈 수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서로를 알고 이해해보려는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존재했다. 공감이라는 심리상태로 승화되지 못한 것들은 차이를 존중한다는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상태로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안타깝게도 존중해야 하는 차이가 많아질수록 둘의 사이가 더 깊은 상태로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했다. 물론 존중을 하면서도 깊은 사이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사벨의 마음이 닫혀버리고 말았다. 알고 이해한 다음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패턴은, 알지 못하고 이해되지 않아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으면 했던 이사벨의 마음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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