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오후 네시

gowooni1 2011. 5. 3. 23:33

 

 

 

에밀과 쥘리에트는 오랜 연인이다. 에밀이 여섯 살 때 한 살 어린 쥘리에트를 알았고, 스물 세살 때에는 공식적으로 부부가 되었다. 그가 올해로 예순 다섯 살이 되었으니, 쥘리에트와 공식적인 부부의 관계만으로는 42년, 비공식적인 연인의 관계만으로는 무려 59년이나 된 셈이다. 그들 부부 사이에는 아이가 없는데 에밀의 주장으로 펼치는 이유는 극히 단순하다. 아내 쥘리에트 한 명만을 사랑하기에 시간이나 정신적인 여력이 부족한데 어째서 그 사랑을 나눠야 할 다른 피조물을 일부러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논리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에밀은 지고지순하게, 지극정성으로 아내만을 사랑해온 남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오랜 기간을 시골의 고등학교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던 교사로 살아온 에밀은 올해로 은퇴를 하고 숙원사업을 시행하였다. 세속의 모든 것을 훌훌 떨쳐버리고 시골로 내려가 아내와 알콩달콩하게, 조용한 전원생활을 즐기기로 한 것이다. 이제야말로 자신이 그토록 염원하던 삶이 시작될 참이었다. 쓰잘데기 없는 사교생활을 멀리 할 수 있고 생계를 위해 억지로 희생하던 시간을 온전히 쥘리에트를 위해서만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좋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얼마전 아내와 함께 보고 온 집은 마치 '너네가 은퇴하기만을 기다렸어'라는 포스로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으니, 꿈에 그리던 은퇴 후 전원생활은 시작부터 순조롭기만 하였다.

 

이윽고 시작된 환상적인 나날들. 복잡하기만 했던 도시와 달리 사람에 치일 일도 없고 오직 자연만을 만끽하며 하루하루를 채울 수 있었다. 여전히 소녀같은 아내에게 모든 시간과 신경을 바치며 남은 여생을 즐길 일만 남았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이웃에 위치한 한 남자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 이 집을 소개해 준 부동산 업자에게서만 들은 이웃에 대한 정보는, 이 시골생활을 즐기는 데 이상적인 조건이 하나 더 첨부된 줄로만 생각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웃집 남자는 의사라는 믿음직스러운 직업조건을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사교생활을 할 필요도 없고 먹을 것이 부족하면 멀리 있는 마트에 가서 장을 봐와도 되긴 하지만 아프면 빨리 달려와 줄 의사가 필요하다는 건 살아가는 데 기본적인 조건이었고 마침 그 이웃이 거기에 합격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엽기적인 이웃 베르나르댕 씨의 반복적인 방문은 에밀과 쥘리에트를 천천히 목조여 왔다. 정확히 오후 4시만 되면 문을 두드리는 거대한 체구의 노의사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갖추어야 한다고 배워왔던 예의따위는 무시해 버려도 목숨을 부지하는데 별 탈이 없음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존재였다. 초대받지도 않은 베르나르댕의 방문에서 그가 지키는 유일한 한 가지는 시간이었다. 정확히 4시만 되면 문을 두드리는 그는 에밀이 현관을 열면 자연스럽게 외투를 맡기고 늘 앉는 안락의자에 가서 커피만을 기다리며 가만히 앉아 있는다. 처음에는 소득없는 사교에 진저리 난 에밀이었으니 차라리 수다스러운 이웃보다는 조용한 이웃이 낫다고 생각하였지만, 베르나르댕이 보여주는 침묵은 조용한 침묵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만히 에밀을 쏘아보며 그가 지키는 침묵은 이런 의미를 내포했다. '감히 네가 내 앞에서 내가 말을 꺼내길 기다리는가?' 그렇다고 해서 에밀이 두서없는 수다를 떨면서 동의를 구하거나 질문을 하면 분노와 혐오가 득실한 표정을 지었다. '감히 네가 나한테 말을 하게 만들어?'

 

베르나르댕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후 4시에 방문을 했다. 에밀과 쥘리에트 부부도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하루 24시간 중에 나머지 시간은 자신들이 이상적으로 여겼던 생활을 하고 있고 오직 2시간만 독특한 이웃의 방문을 견뎌내기만 하면 된다는 논리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웃집 남자는 그들 부부의 24시간을 온전히 지배하는 셈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언짢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베르나르댕의 방문이 오늘도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고 오후 4시 즈음이 되면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문 두드리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오후 6시가 되어 이웃이 떠나면 안도의 한숨을 쉬곤 했지만 지나간 2시간이 남은 하루 22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으로 여겨질 지경이었고 밤이 되면 이 처치곤란한 이웃때문에 걱정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문제는 너무나 사회적인 인간으로 길들여져 있었던 에밀이 무례한 이웃에게 무례한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에도 있었다. 그는 도저히 자기 입으로 그에게 그만 와달라는 말을 하기 힘들었다.

 

베르나르댕은 오직 존재만으로 에밀 부부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에밀은 피해자가 어떻게 가해자로 변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에밀의 첫번째 공격은 자신의 가면을 던져버린 후에야 성공한다. 자신이 예의바른 인간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하였지만 그의 예절은 예절을 아는 사람에게만 통용된다는 것을 깨닫고 무례는 무례로 맞서기로 결심한다. 더 이상 나의 집에 방문하지 말아주시오! 어째서 당신은 멋대로 내 집에 들어와 우리의 완벽한 생활을 이리도 파괴한다는 말이오! 충격을 받은 베르나르댕은 돌아가고 다시는 방문을 하지 않는다. 에밀의 완벽한 승리다. 하지만 에밀 역시 또 하나의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그동안 왜 하지 못했다는 말이지? 가해자는 또 하나의 피해를 받지만 이제부터 진정한 피해자적 의식으로 똘똘뭉친 가해자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에밀과 베르나르댕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가 이야기를 끝까지 지탱하는 긴장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