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gowooni1 2011. 5. 24. 22:30

 

 

 

 

84일째 노인은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육십 평생을 바다 사나이로 살아온 노인에게 있어 그건 자존심에 치명타를 입히는 일이었고 사람들은 그의 행운이 다 했다고 말하며 동정했다. 노인을 부모님보다 따르던 소년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는 하루 한끼의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터였다. 소년이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고기 잡는 법을 알려준 노인이었지만 소년의 부모는 더 이상 노인을 따라 배에 타지 못하게 했다. 노인보다 행운이 따르는 다른 사람들의 배를 타서 고기를 잡도록 했고, 노인은 쓸쓸하게 홀로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가 고기 한 마리도 못 건져 오는 날을 보내고 있었다.

 

85일 째 되던 날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노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 소년의 집으로 가서 아이를 깨우고 함께 카페로 가서 아침 식사를 했다. 노인에게 아침 식사는 깡통에 들은 진한 커피 한 잔이 전부였는데, 음식을 단지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그에게 식사는 사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소년의 도움을 받아 바다로 나갈 준비를 마친 노인은 점심 대신 물 한통을 가지고 승선했다. 이제 겨우 85일 째라며, 87일 동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과거에 비교해 볼 때 낙심하기는 이르다는 소년의 위로를 들었지만 사실 노인은 오늘이야말로 정말 큰 고기를 잡겠다는 각오를 했다. 87일이나 행운을 묵혀둘 필요도 없었고 지난 85일 동안 노인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빚도 갚고 한 계절을 날 준비도 좀 해두고 싶었다.

 

큰 고기를 낚으려면 지금까지와 다른 패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더 먼 바다로 나아가 보기로 했다.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는 곳으로 들어가 모든 낚시 대를 드리우고 찌가 흔들리기를 기다리며 한 나절을 보냈다. 그는 다른 어부들과 달리 고기잡는 일에서만큼은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지난 오랜 시간 고기를 잡지 못했던 것은 단지 행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노인의 생각은 옳았다. 그동안 오지 않던 행운이 그에게 조금씩 다가오려는 듯, 그의 정어리 미끼를 문 것은 제법 큰 다랑어였다. 그렇지만 다랑어의 크기는 노인의 기대치에 비추어볼 때 피라미에 불과했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 고기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드디어 노인의 기대치에 부합하는 물고기가 미끼를 문 듯 했다. 오른손을 감은 낚시줄의 묵직함으로 감잡아보건대 결코 만만찮은 놈이었다. 노인은 희열을 느끼며 드디어 자신의 상대가 될만한 가치가 있는 놈이 걸렸음을 직감했다. 섣불리 놈을 건드려서 미끼만 먹고 도망가버리도록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노인은 시간과 작전을 그러모아 놈이 자신의 미끼를 더욱 단단히 물도록, 그래서 절대 낚시바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을만큼 깊이 물도록 녀석과 줄다리기를 했다. 놈은 힘도 어마어마하게 세서 노인이 탄 작은 배를 의식하지도 못하고 끝없이 조류를 거슬러 동북쪽으로 향했다. 노인이 사는 아바나 항과는 정 반대 방향이라서 집과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었지만 노인은 결코 놈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오랜만에 걸린 놈이기도 했거니와 자신의 능력을 한 번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드디어 놈이 수면 위로 떠올라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노인은 자신의 직감이 틀림없었음을 확인했다. 과연 놈은 자신이 이틀 밤낮을, 오른손과 눈 밑이 낚시줄로 찢어지고 왼손에 쥐가 나 감각이 없어지도록 꼭 잡으며 포기하지 않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자신이 타고 있는 보트보다 몇 피트는 더 긴 몸체를 가지고 있었고 어마어마한 덩치에 탄력있는 몸뚱이는 적어도 천 오백 파운드는 나가보였다. 그 정도면 자신이 빚진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고도 한 철을 날 수 있는 충분한 크기였다. 노인은 놈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결코 살려보낼 마음도 없었다. 자신과 적수가 될만한 가치가 있는 물고기라는 것에 동료애마저 느꼈지만 적이기 때문에 죽여야 자신의 존재가치가 입증되는 것이었다.

 

드디어 노인은 마알린을 죽였다. 죽이고 나서 보니 놈은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커서 도저히 노인의 배에 태울 수 없는 처지였다. 사흘 밤낮을 항구와 정 반대 방향으로 나왔으니 돌아갈 일이 까마득하기도 했지만 이 다랑어를 과연 무사히 가지고 도착할 수 있는가도 문제였다. 대서양 깊은 바다에 사는 온갖 종류의 상어들이 다랑어가 흘린 피의 냄새를 쫓아 올 것이 뻔했다. 다랑어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상어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피 냄새에 민감한 그것들은 잔뜩 굶주려 있기도 했다. 노인에게는 아직 작살과 칼과 노와 곤봉이라는 무기가 남아있었고 그것들로 상어의 공격을 차례차례 물리쳐냈다. 죽인 다랑어를 보호하는 것은 하나 남은 자신의 의무였고 존재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노인은 능수능란하게 상어의 머리를 찍어가며 죽였고 그것들은 하나 둘 나가떨어졌지만 그와 함께 마알린의 살덩이도 한뭉텅이씩 떨어져나갔다.  노인은 더 이상 자신의 다랑어를 볼 자신이 없었다.

 

동이 트기 직전 드디어 노인은 아바나 항에 도착했다. 아직 항구에는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보트와 그 옆에 대가리와 꼬리와 뼈만 남은 다랑어를 함께 육지로 끌어 묶고는 오두막으로 들어가 곤히 잠이 들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노인이 살아돌아왔을 때 착한 마을 사람들은 노인의 복귀를 환영하였고 소년은 커피를 한 가득 오두막으로 가져가고는 아무도 노인을 깨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태어나서 한번도 이토록 피곤해본 적이 없는 노인은 다시 잠에 빠지고 사람들은 노인의 배 옆에 붙어 있는 거대한 물고기의 뼈를 보면서 감탄했다. 한 관광객 커플이 나타나 보트 옆에 있는 고기의 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한 사람이 그것은 티뷰론이라고, 상어의 일종이라고 대답하고 커플은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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