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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있는 승부

gowooni1 2011. 5. 20. 01:41

 

 

 

 

언젠가 인터넷에서 안철수 교수가 그의 아내(역시 대학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순간 드는 생각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 부부는 역시 닮아가는구나. 둘, 저런 모습으로 누군가와 함께 늙을 수 있는 것만큼 큰 행운도 없겠다. 오랜 시간 서로를 배려하고 각자가 가는 길을 존중해 주면서 믿음 아래 성장을 해온 그들 부부의 모습에서 학자의 성실한 모습과, 인생 전체를 보다 나은 나를 추구한 자들의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배우 윤정희의 모습도 오버랩 되었다. 그저 결혼했으니 어쩔수 없이 살아간다는 식의 시간만 대충 공유한 부부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진심으로 농축된 역사를 공유해 온 부부들의 모습에는 공통점이 있는 모양이다. 안철수 부부만의 특색이 하나 있었다면 그들은 남편과 아내로서의 모습이라기보다 서로에게 있어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친구에 더 가깝게 보였다는 점이다.

 

안철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특이한 이력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전 텔레비젼 토크쇼 프로그램에 나온 후로 그의 과거는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의사였고 대학교수였지만 다 뿌리치고 나와 벤처기업을 차린 사람,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에 MBA를 따러 미국으로 유학을 훌훌 떠나버린 사람, 카이스트 교수. 많은 경험을 한 사람답게 많은 에피소드도 뒤따른다. 의과대학으로 출근을 해야할 때는 바이러스 퇴치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 6시까지 작업을 몇년 간 했고, 원리 원칙에 충실한 나머지 편법이 난무한 한국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군생활이나 대학교수직이 원활하지 못했다. 위계질서를 존중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에게 늘 존댓말을 쓰며 배려심을 몸소 가르쳐준 어머니 덕에 대위 시절에도 아랫사람에게 반말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아직 작은 연구소 수준이었던 시절 미국 맥아피의 1천만 달러 인수 제의를 단칼에 거절한 이유가, 자기가 회사를 팔아버리면 우리 나라 국민들이 바이러스 백신을 비싼 돈 주고 사서 쓰게 될 판이라서였다는 건 여전히 감동이다.

 

그가 미국에서 평생 요트나 타며 사랑하는 가족과 유유자적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한 것은 돈보다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그가 그런 식으로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명예보다 그 이상의 가치들도 언급했던 것을 잊어버렸다. 어쨌거나 명예가 최우선은 아니었다. 그는 타인들이 생각하는 최우선의 가치를 자신의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생각한 것이 옳다고 믿고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 내세운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안철수 연구소와 V3 백신은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보다 높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영혼을 다해 만들어 놓은 세계였다. 맥아피 회장이 안철수의 얼굴 앞에서 1천만 달러를 흔쾌히 제시했지만 안철수가 단칼에 No,라고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자신의 영혼에 대한 지조, 인생의 목적을 팔지는 않겠다는 그의 명백한 절개 때문이었을 것이다.

 

편한 길을 선택하지 않는 그의 고집은 융통성이 없어보인다. 그와 가까운 사람이 되면 피곤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데 하는 고어도 생각난다. 하지만 그의 삶을 보면 그게 꼭 맞는 말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인드가 선천적으로 배여 있는 그는 자신의 가치관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도 배려와는 거리가 먼 자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있고 각자 인생관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데 무엇이 옳고 그르다를 판단할 수는 없으며 그들 하나하나를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만도 부족하다, 오직 나에게만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적용할 수 있으니, 나 하나만이라도 그 가치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게서 본받고 싶은 덕목들은 물론 많다. 사람에게 치이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에는 내부적 방어기제를 얻어가고 싶고, 중심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들 때에는 그의 흔들리지 않는 자기 원칙 고수 자세를 훔치고 싶다. 자신에게는 엄격해도 남들에게는 절대 피해를 주지 않고 늘 타인 배려를 먼저 하는 자세는, 이기심이 고개를 슬슬 들어 자신이 굉장히 편협하고 작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때, 각성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들을 때 드는 자만심이 그릇의 한계이자 실패의 근본이라는 것을 이성으로는 깨닫고 있으면서도 그 기분에 도취되어 꼴사나운 모습이 되어가면, 그런 마음의 싹을 싹둑싹둑 잘라버렸다는 그의 말을 명심하고 싶다. 분수도 모르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들떠 말도 안되는 꿈을 꾸고 있을 때는 자신의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는 대신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을 했다는 그의 한계인정자세를 벤치마킹하고 싶다. 한계를 인정하면서 현실에 좌절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깨어있는 한 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않는 것이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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