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제주-4

gowooni1 2011. 4. 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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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식물원과 면세점에서 소요시간이 길어져 원래 코스, 이중섭 미술관을 거쳐 제주민속박물관, 섭지코지, 성산일출봉, 성읍민속마을, 만장굴이라는 코스를 대폭 줄여야 했다. 이중섭 미술관을 들러 그가 살아간 흔적들을 보고 곧장 섭지코지로 향했다. 이중섭 박물관은 들를까 말까 고민을 제법했지만 다들 이중섭을 알고 있었고 그가 평안도 사람인데 어떻게 제주도까지 내려와 살았던지, 그의 그림이 황소 말고 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처음부터 이중섭의 작품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곳 방문은 뜻밖의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한국전쟁때 그가 피난해 와 1년 남짓 살았던 한국 전통 초가 가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그가 가꾸었던 정원에는 노랗고 예쁜 유채꽃이 낮은 돌담 너머로 아기자기하게 보였다.

 

이중섭 미술관은 그 이름을 내걸고 세운 미술관치고는 규모도 굉장히 작고 작품 수도 별로 없었고 또 작품의 크기도 작았다. 오히려 그가 일본인 와이프랑 주고 받은 편지와 그가 살아간 행적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들이 더 재미있을 정도였다. 오년 남짓한 연애기간을 거쳐 30살에 결혼한 이중섭이 41살까지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와이프와 편지를 주고 받았던 인생을 상상해보면 그가 그렇게 속편한 인생을 살다 간 건 아니었을테다. 게다가 그의 요절 원인은 바로 간염과 영양실조였다. 생계에 연연하지 않고 고고하게 살며 자신의 세계만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삶이란 궁핍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잘 모르겠다. 어쨌건 그는 와이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예술가란 가족이고 친구고 필요없이 고독과 외로움과 친구하며 홀로 고고하게 살아가는 부류가 많지만 자신은 분명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하고 공동의 세계를 구축하는 부류의 사람이며 그러므로 자신에게 있어 와이프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고 구구절절하게 적고 있었는데 정말 그랬다면 그와 아내의 삶이 육체적으로는 고단했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행복했을거라고 믿을 수 있겠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도중에 식당을 찾을 길이 없었고 우리에게 남은 낮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곧장 섭지코지로 향했다. 가다가 중간에 보고 싶은 게 나오면 잠깐 들르고, 섭지코지에서 시간이 남으면 일정 중 한 군데를 추가해서 보기로 했다. 나는 제주도 외곽을 두르는 1132번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달렸다. 오른쪽으로는 제주도 남쪽 바다가 주욱 펼쳐져 있었고 간혹 나오는 마을은 전통 제주도 바닷가 마을로 보여 운치도 있었다. 관광지가 아닌 이런 원주민이 사는 곳을 직접 걷는 것이야말로 진짜 제주도를 만끽하는 노하우 중 하나라는 누군가의 의견에-내 의견이었던 것 같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래서 우리는 중간에 한 마을에 들러 골목 골목을 조금 거닐었다.

 

올레길 제 몇 코스라고 써 있는 팻말을 보았다. 낮은 집과 낮은 담장들 사이로 사람 사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시골 마을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한 이층 집 건물에서는 멀리서부터 음악소리가 들려와 카페인 줄 알았는데 일반 사람 사는 가정집이어서 더욱 마을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어떤 예술가가 제주도에 내려와 카페 같은 분위기가 나는 집에 머물며 작품에 열중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리고 그런 인생에 대한 동경 속에서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동네에 유일하게 있을 것 같은 작은 구멍 가게는 담배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어서 알아보았다. 단층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늘어서 있고 나무들이 많고 마당이 있고 개들이 친근하게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꼬리를 치고 구멍가게가 하나있는 마을이라면 육지에도 많을 테지만 이곳이 제주도라는 이유 때문에 더욱 귀농이 멋있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딴 길로 샐 틈 없이 섭지코지로 향했다. 이국적인 섭지코지는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데다가 사진을 많이 찍어두어 기억이 퇴색될 염려는 별로 없으므로 기록을 특별히 해 두지 않을 작정이다. 섭지코지에 가기 직전 왼쪽으로 보이는 성산 일출봉의 옆모습이 머릿속에 특별한 영상으로 각인되었다. 성산일출봉은 아직 가보지 않은 곳으로 다음을 위해 아껴두기로 했다. 다음을 위해 아껴두기로 한 곳 목록은 지금까지는 이렇다. 한라산, 우도, 성산 일출봉, 마라도. 또 어딘가가 추가되면 제주도를 방문해야 할 이유가 또 늘어나니 그것도 좋은 일이다.


섭지코지에서 내려온 시간은 다른 곳을 하나 더 들를 수 있지만 너무 멀면 애매한 시간이었다. 성읍민속마을로 코스를 정하여 열심히 달렸는데 막상 도착하니 무엇을 봐야 할 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패키지로 돌아다녀서 누군가가 설명해 주는 것을 그냥 듣기만 하면 되었는데. 날도 추워지고 허기져 지친 우리는 민속마을을 자세히 둘러보는 것은 포기하고 식당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먹기로 했다. 정식을 시켰는데, 쑥전, 흑돼지 두루치기, 옥돔이 세트로 나오는 메뉴였다. 옥돔이 작긴 했지만 왜 사람들이 제주도에서 옥돔을 찾는지 공감될 만큼 괜찮은 맛이었고 쑥전은 과자와 반찬의 중간 경계에 있는 약간 달콤한 맛이어서 나와 은혜만 실컷 먹었다. 두루치기는 달달했는데 고기가 큼지막해서 좋았다. 주물럭과 두루치기와 제육볶음의 차이가 무언지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 음식이긴 했지만. 혜인이는 간장게장을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간장 게장은 한 접시를 추가하는데 3천원이라고 써 있는 것을 보고 섣불리 마음껏 먹지 못하는 소심함이 귀엽기도 했다. 더 먹고 싶으면 그깟 3천원 더 내고 먹으면 돼지 왜 눈치를 보냐고 했더니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또 하나를 집어 열심히 먹는다. 나와 은혜와 혜진이는 그런 그 애를 보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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