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제주-1

gowooni1 2011. 4. 5.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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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느긋하게 경치를 보고 생각도 하며 즐기는 여행을 한 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누구의 동행도 없이, 목적지에 아는 지인도 없이 무작정 떠나보려고 했다. 그러다가 항공사 마일리지를 보니 제주도를 다녀올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마침 시간이 되는 친구가 둘이나 생겼다. 함께 어딘가로 여행을 가기로 하기는 예전부터 약속되어 있었고, 어줍잖게 1박 2일로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이나 걸리는 문경 같은 곳에 가느니 차라리 같이 월요일 하루 연가를 쓰고 깔끔하게 제주도에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나는 개인적인 일 외에는 평소 발동하지도 않는 추진력을 동원하여 렌트카와 펜션을 예약하고 혜인이와 은혜에게는 내가 예약한 항공편명과 시간을 고지했다. 한 번 아다리가 맞으면 일이란 것은 착착 진행되게 되어 있다. 제주도에 가기로 결정을 하고 모든 예약이 끝난 건 단 하루 아니 반나절이 지나서였다. 금요일 아침 11시에 결정을 하고, 예약이 완료된 시간은  오후 4시 경이었다.

 

일요일에 잠깐 스타벅스에서 혜진이를 만나 여행 계획을 이야기 했더니 그애도 가겠다고 말했다. 우리로서는 동행이 많을수록 재미도 있어질 것이고 개인당 들어가는 경비도 축소될 것이므로 환영이었다. 평소에 대만이나 일본으로 여행을 가자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늘 거절만 하던 혜진이도 한 번 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으니 늘 대던 엄마 핑계는 우스워졌다. 그 애는 늘 엄마가 돈이 없다고 안된다고 했다면서 나의 청을 거절하고는 했다. 이번에는 어떻게 가려고? 그냥 예약 다 하고 엄마한테 가겠다고 하려고. 몰라, 그냥 갈래.


그래서 우리 일행은 넷이 되었다. 토일월 이박 삼일 일정으로 다소 빠듯해졌다. 토요일 정오가 막 지난 12시 10분 김포에서 출발하여 1시 15분 제주 도착, 올 때는 월요일 오후 5시 출발하여 6시 김포 도착 예정이었고 렌트카는 토요일 1시 반에 대여 시작, 월요일 오후 4시에 반납하기로 했다. 펜션은 중문관광단지 근처에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공항에서 꽤 먼 곳이었지만, 중문에는 볼 것도 많았고 서쪽과 동쪽에 포진해 있는 볼거리들의 중간 정도에 위치했다. 우리 넷은 전부 평일에는 일상의 번잡함에 젖어 여행에 대한 기대를 키우기에는 정신적으로 여력이 없었다. 다들 출발 전날까지 특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한 만남이나 연락도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 하루 전 날 오후 즈음에 공항에서 만나자는 문자를 겨우 주고 받았을 뿐이다.


나는 제주도에 이미 두 번 다녀왔었다. 한 번은 가족끼리 여행이었고 두 번째는 친구랑 여행사 관광버스 대절 패키지 여행이었다. 첫 번째는 16년 전이고 두 번째는 7년 전 일이다. 그리고 두 번 다 내가 계획을 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러 다니는 여행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계획을 짜고 미리 공부도 좀 해서 다닐 생각이었다. 두 번이나 간 것치고 현지에 대한 사전적 지식이 그다지 풍부하다고 자부할 수 없었는데 이건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내가 지녔던 자세에 비교할 때 제주도를 모욕하는 처사였다. 출발하기 하루 전 금요일 저녁 퇴근하면서 서점에 들러 한 손에 간편히 잡힐 수 있는 제주 가이드 북을 하나 사 그날 저녁 잠들기 전까지 독파를 했다. 머릿 속에 대충의 여정을 세우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을 듯 했다.


가기 전에 사소한 일로 조금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겼다. 각자 라이프 스타일이 다른 이유에서 기인한 문제였는데 우리가 만나서 공항에 가는 시간 때문이었다. 평소 시간에 급박하게 쫓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느긋하게 여유시간을 가지며 출발하는 나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여행에 대한 기대를 조용히 키우는 것도 일정의 일부라 생각한 반면, 혜진이는 국제선도 아니고 국내선인데 무엇때문에 그렇게 일찍 들어가려고 하느냐고, 괜히 일찍 만나 기다릴 필요 없이 시간에 딱 맞춰 보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해결책을 제시했다. 괜히 중간에 만나 함께 공항에 갈 필요 없이, 공항에서 직접 만나는 것으로 하자, 도착하는 시간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알아서 하자고 했다. 그렇게 해결을 보기는 했지만 이 사소한 일에서부터 우리가 매사에 대하는 사고방식에 차이가 있음을 파악하고, 이성적으로는 서로의 삶의 방식을 이해해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며 별 문제 없는 척 했지만 이미 서로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배타적 마음에 감정이 어느 정도 상하고 말았다.

 

이런 사전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조심하고 배려하며 잘 다닌 편이었다. 나는 일찍 도착해서, 늦게 도착할 것 같은 일행의 탑승권을 미리 뽑아 두고 공항 내에 있는 스타벅스에 앉아 불고기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시킨 후 그 애들을 기다렸다. 예상과 다르지 않게 그 애들은 출발하기 40분 전에 도착했는데 실은 내가 굳이 탑승권을 뽑아두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미리미리 여유있게 해두려는 내 마음은 그 애들이 생활속에서 체득한 진짜 여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급증이 되어버렸다. 여유란 것도 결국 비교대상에 따라 비여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날 아침 여유를 부리겠다고 일찍 나오다가 운전면허증을 놓고 나오는 바람에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비여유를 즐기느라 진이 약간 빠질 정도였는데.


혜인이가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보지 않았다는 소리에 내가 더 두근거렸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던 때의 설렘은 지금도 남아있어서 늘 이륙 전에는 기분이 고조된다. 그 고조됨의 정도가 점점 낮아지기는 했지만, 혜인이의 등장은 다시 그 고조감을 상승시켰다. 우리는 각각 창쪽에 앉아 따로따로 비행을 즐겨야 했는데, 그 애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내가 비행기를 처음 타는 기분이 들었다. 활주로를 천천히 기어가는 소리에서부터 이륙 직전에 잠깐 멈추는 시간, 이륙을 하기 위해 힘차게 달리며 엔진을 급속도로 가동시키는 소리와 이윽고 비행기 바퀴가 땅과 떨어지면서 순수하게 엔진소리만 들리고 뒤로 젖혀지는 순간, 그와 동시에 바깥에 보이는 인간 세상이 조감도에서나 볼 법한 작은 모형으로 변모되는 시간의 경과 그 모든 것이 다시금 새롭게 비춰졌다. 그러나 막상 비행기에서 내려 그 애에게 첫 비행이 어땠냐고 물어보는 순간, 그 기분은 그저 온전히 나의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촌스럽게도 혜인이는 비행기를 타면서 귀와 머리가 아파서 고생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마디 해주었다. 너랑 해외 여행 가기는 글렀네. 혜인이는 말했다. 연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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