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제주-2

gowooni1 2011. 4. 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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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카들이 주차되어 있는 제 8주차장으로 가서 모닝을 인수받고 출발한 시간은 1시 50분 경이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끝이 갈색으로 변한데다 탈모가 진행중인 것 같은 높은 야자수들이 우리를 반겼고, 하늘은 높았고, 나는 배가 무척 고팠다. 제주 공항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첫번째 장소로 흔히 선정되는 용두암에 도착해서 주차장 앞에 있는 분식집에 들어갔다. 분식집에서 시킨 점심은 다시는 상기하고 싶지 않을만큼 최악이었다. 분식집 주인은 우리가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를 최대한 이용하는 사람이었는데, 만들어 놓은지 3일은 지났을 법한 떡볶이를 데워 내놓았다는 점에서 압권이었다. 칼국수는 맛이 없었고 김밥에는 든 게 별로 없었지만 그거야 음식 솜씨가 없거나 엄마같은 정성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참을만 했다. 하지만 그 떡볶이란. 떡은 퉁퉁 불어 그 형체가 알아보기 힘들어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어묵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도 안되는 맛을 후추를 잔뜩뿌려 가려보려고 한 분식점 주인의 노력은 일분도 채 소용없었다. 분식집에서의 어처구니 없음은 무시해버릴 가치가 있는 곳이므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분식집에서 나와 옆에 있는 세븐 일레븐에서 커피를 한 잔씩 사 마시며 입가심을 한 후 용두암으로 천천히 걸어내려갔다. 늘 그랬듯 그곳에는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했다. 하늘에서 공항으로 내려오는 비행기들이 바다 표면을 향해 낮게 나는 모습도 여전했다. 그리고 제주도에 올 때마다 들렀던 용두암의 자태도 여전했다. 꿋꿋하게 바다를 향한 용의 머리는 한결같은 위치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듬직했다. 늘 같은 곳을 바라보고 늘 같은 자리를 지키는 그런 사람이 되고 또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용두암에서 사진을 찍고 우리는 1132번 도로를 타고 중문으로 넘어갔다. 중문에는 볼 거리가 많으니 일단 펜션에 짐을 풀고, 근처 서귀포 시에 있는 이마트에 가서 저녁에 먹을 거리를 장보고, 시간이 남으면 근처 뷰 포인트를 한 두 군데 들를 예정이었다. 제주도는 생각보다 큰 섬이라서 제주시에서 중문으로 넘어가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드라이브 하는 길은 한라산 아주 중턱은 아니고 약간 중턱, 그러니까 초원에 말들을 풀어놓고 키우면 딱 어울릴 듯한 배경들이 펼쳐져 있었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드디어 제주도에 왔음을 실감시켜주었다. 여행을 왔다는 기분을 즐기며 펜션에 도착해 짐을 풀고 약간 쉰 다음 천제연 폭포에 들러 사진을 찍고, 올레꿀빵을 사 먹었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올레꿀빵은 하나에 천원이었는데, 음, 맛을 솔직하게 말하자면, 다소 고전적인 과자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맛이 있었지만 다른 애들은, 다시는 사먹고 싶지 않을 거라고 말하긴 했다. 올레꿀빵을 먹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이 꿀빵은 배가 무척 고프지 않으면 맛이 아주 있을 빵은 아니고, 가격에 비해 높은 포만감을 안겨주도록 제작되어 있으며, 이름에 '올레'라는 명사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보건데, 올레길을 걷는 여행자들이 허기졌을 때 하나씩 사먹으라고 만들어 놓은 과자와 빵의 경계에 있는 식품인 듯 했다. 그저 추측이긴 하지만 대충 그럴싸한 이유처럼 생각되었고, 이러한 판단 결과를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상당히 수긍하는 분위기였으므로 그렇게 믿어보기로 했다.


서귀포 시로 넘어가 월드컵경기장 앞에 바로 붙어 있는 이마트에 들러 우리의 여행을 기념하는 첫날 저녁의 만찬을 위한 장을 보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제주산 돼지고기를 구워 먹자는 아이디어에 이견을 내지 않았다. 제주산 돼지 삼겹살 400그램과 목삼겹 400그램 총 800그램을 사고, 상추와 깻잎, 청양고추, 쌈장, 새송이 버섯과 팽이 버섯을 사는 것까지 우리의 식성은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술을 대면하는 각자의 취향은 타협을 몰랐다. 나는 와인을 고집했는데 당연히 고기를 먹으므로 스위트한 것은 사양이었다. 내가 와인을 고르는 것에는 모두 동의를 했으나 달달한 와인을 골라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다. 할 수 없이 모스카토 다스티 하나를 고르고 맥주를 사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기로 했다. 혜진이는 와인을 즐길 마음이 별로 없었고 맥주는 배가 불러진다고 싫어하며 오직 소주를 추구했다. 제주도 산 소주인 한라산물을 한 번 마셔보겠다고 한 병 골랐다. 혜인이는 아사히 맥주를 마시고 싶어했다. 은혜는 술을 마실 줄 몰랐으므로 와인을 조금 마시고 음료수를 마시겠다고 했다. 우리는 결국 한라산 물 하나, 아사히 병맥 4개, 카스 라이트 1.6리터 1개, 모스카토 다스티 와인 한 병, 오렌지 주스 1.5리터 들이 하나를 사기로 합의했다. 아침에 먹을 라면과 저녁에 먹을 컵라면에도 각자의 취향이 있었으나 라면은 비교적 대중적인 식품으로 쉽게 합의가 가능했다. 과자는 각자 먹고 싶은 것을 고르는데 관대함을 보였지만 과일에서는 또 의견 조율이 필요했다. 따라서 우리가 하루 저녁 먹을 장을 보는 데에는 총 11만원이라는 금액이 들었는데, 이 때까지는 우리는 이 정도 장을 보면 이틀 저녁은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 만찬을 벌이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거의 다 먹었다는 것을 알고난 후에는, 차라리 밖에서 외식을 하는 편이 싸게 먹혔을 거라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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