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gowooni1 2009. 11. 3. 22:37

 

[기억의 지속] 1931. 캔버스에 유채. 뉴욕 현대 미술관 소장.

 살바도르 달리의 너무나 유명한 작품

                                    

내게 주어진 개인적인 시간만 있으면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시간은 감히 돈이나 다른 물질적 재화와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최고의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산업화 사회로 접어들고 정밀한 시간 측정 기계-시계-가 발명되어서 인류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더 용이하게 접하고 사용하게 되었지만 사실 시간이라는 말보다는 인생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 그러니까 소중한 것을 하기 위한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 가령 책을 읽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운동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곧 소중하지도 않은 일들을 하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며 자신을 변호한다. 소중한 것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소중하지 않은 것을 하며 어느 정도 개인의 시간을 희생해야 하는 법이라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21세기의 사회는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다기 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진정으로 그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런 삶의 방식이 하나의 인생 법칙이라고 생각하다가 나중에 자신이 진정 시간을 내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는 상황까지는 결코 존중할 수 없다.


나는 최근 하나의 생각에 몰두하기 시작했는데, 과연 내가 그동안 어떤 시간 속에서 살아왔는가 하는 주제였다. 크로노스 속에서 살아왔는지 아니면 카이로스 속에서 살아왔는지. 크로노스는 시계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체험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리 저리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철저하게 크로노스의 지배를 받는 사람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이건 명백한 모순이다. 나만의 시간을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으면서도 그 시간을 지배하지 못하고 거꾸로 지배를 당했다니. 만약 내가 시간을 정말 최고의 재산이라 생각하여 유용하게 사용했다면 나는 분명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었어야 하고 그 누구보다 카이로스 속에서 살았어야 한다는 말이다.


크로노스, 시계 시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몇가지 특징이 있다. 수시로 시간을 보고 그 시간에 맞춰 과제를 달성하려 한다. 과제를 완수하는 게 중요한게 아니라 시간에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 하나를 마치면 또 다른 과제를 또 다른 시간 안에 완수해야 한다. 무언가를 했다는 만족감 없이 끊임없이 다른 무언가를 쫓기듯 추구해야 한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해야할 과제가 많다면 개개의 과제 완성도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시간 안에 맞추는 것이다.


우리는 용돈 기입장이나 가계부 같이 금전적 지출에 대한 목록을 정확히 기입하면서 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설령 그런 것을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돈을 쓰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최대의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 지출을 하려고 한다. 왜 그런데 시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사용한 시간 대비 최대한 만족감을 누릴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은 돈이라는 말에 극도의 반대를 표명하는 나지만, (시간>>>>>돈 이므로) 가장 쉬운 예는 역시 시간과 돈을 비교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인생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시간 따로 인생 따로 생각을 하며 시간 대비 최대 만족을 누릴만한 일을 하려는 생각조차 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인생은 대략적으로 삼만(30000)일이라는 개념을, 내가 처음 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스웨덴의 물리학자 보딜 옌손의 '시간에 대한 열가지 생각(10 Thoughts About Time)'에도 나와 있었다. (할 수 없지,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니까) 그는 책의 처음부분에서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은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을 영웅으로 떠받들지는 않지만 단 한사람만은 제외라고 했다. 그 사람은 바로 오래전 돌아가신 자신의 할머니이며 그 이유는 자신의 할머니야말로 소중한 것을 하기 위한 시간이 부족한 적이 없던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사실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시계를 소유하지 않았을 우리의 조상들은 다들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수시로 시계를 보면서 '이걸 빨리 해야 하는데' 하는 강박관념이 우리의 조상들의 삶에서도 적용되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원래 세상이란 건 불공평하지만 그나마 가장 보편적이고 공평한 것이 태어날때 비슷하게 주어지는 30000일 정도의 시간이다. 그러나 그건 시계 시간으로서 그럴 뿐이고 체험 시간으로서는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그가 비유를 한것을 생각해보자. 싫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10분도 1시간처럼 길게 느껴지지만 아름다운 여성과 함께 있으면 하루도 1분처럼 짧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죽도록 싫은 일만 하면 오래 사는 것처럼 느껴지고, 시간 가는 줄 모를만큼 즐거운 일을 하다보면 인생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는 말인가?


내가 말하려는 건 이러한 비논리가 아니다. 일단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우리는 시계에 지배당하지 않는 카이로스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다. 무아지경이 될만큼 무언가에 몰입하다보면 눈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가버릴수도 있지만 시간이 확장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의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게 되고 그만큼 길고 충실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어느 한가지 분야에서 최고봉에 이른 많은 대가들이 이러한 확장된 시간을 체험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항상 카이로스 안에서 살다보면 언젠가는 그런 확장된 시간을 마음만 먹으면 경험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보다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선 이런 확장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언젠가 그런 경지에 이르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당장 카이로스적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

 

<주 : 본 글과 이미지는 관계가 별로 없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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