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인형의 집-헨릭 입센

gowooni1 2011. 3. 26. 01:07

 

 

 

노라는 요즘 기분이 매우 좋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긴 하다. 남편이 벌어들이는 수입의 차원이 변해 생활 형편이 월등히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변변찮은 수입을 벌어들이던 변호사 남편 헬멜이 은행의 전무로 근무하게 되었고 이제는 훨씬 많은 돈을 벌어들일 예정이었다. 앞으로 노라는 돈에 전전긍긍하며 가장 싼 것들만 사지 않아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바느질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고급스러운 제품들을 사도 되고 질 좋은 음식들을 먹어도 되고 예쁜 옷을 살 수 있게 되었으며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는 생활만이 노라를 위해 펼쳐질 것 처럼 보였다.

 

그래서 노라는 더욱 즐겁게 조잘거리고 행복하게 웃으며 다녔다. 그런 아름다운 노라를 헬멜은 나의 귀여운 종달새, 작은 인형이라는 달콤한 애칭들로 불렀고 그 역시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헬멜은 자신의 사회적 입지가 변하여 앞으로 져야할 책임에 대해 확실히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신분이 상승한 사람으로서 응당 받아들여야 할 의무라고 생각했고 또 그런 상황을 은근히 즐겼다. 이제 자신은 지금껏 사귀어 온 사람들을 멀리하고 좀 더 품위있고 교양있고 명성이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새로운 격에 어울리는 생활을 해야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런 자신에게 어울리는 젊고 예쁘고 명랑하고 인형같은 아내의 작은 사치를 용서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아내의 상에 노라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헬멜이 몰라서 하는 생각이었다. 노라에게는 만약 헬멜이 알게 된다면 치명적인 결점이라고 여길만한 게 있었다. 사회적 입지와 명성을 중시하는 헬멜은 무엇보다 도덕적 결함을 용납하지 않았고, 때문에 과거 자신의 동료였지만 이제 부하직원이 된 크로그스타를 해고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옛날 아직 헬멜이 가난하고 입지가 없던 시절, 그가 너무 아파 외국으로의 요양이 필요하던 때, 그들 부부에게 요양비를 빌려준 사람이 바로 크로그스타였다. 사건 자체는 별로 문제가 되어 보이지 않지만 그 방법이 옳지 않았다. 크로그스타에게 돈을 빌린 사람은 헬멜이 아니라 노라였는데 노라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차용증에 이틀 전에 이미 돌아가신 친아버지의 서명을 썼던 것이다. 그러니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어 해고한다는 크로그스타와 똑같은 결함을, 자신이 순수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아내도 지니고 있었다.

 

크로그스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이용해 노라를 협박한다. 자신의 해고를 취소시키라고 헬멜을 설득하지 않으면 비밀을 공개하겠다고 말하며 그녀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노라는 그런 비열한 협박이 통할 것 같냐고 크로그스타를 나무라면서도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남편을 설득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자신이 이제 새롭게 만들어나갈 세계에 그런 도덕적 치명타가 있는 사람을 고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예정대로 크로그스타를 해고하고 만다. 이제 남은 일이라곤 예정대로 크로그스타가 헬멜에게 노라의 과거 결함을 공개하는 것이고, 그런 노라에게 남은 희망이라고는 남편의 애정을 믿는 것 뿐이다. 자신의 득을 위하여 돈을 빌린 것도 아니고 오직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 그랬으니, 설령 헬멜이 실망은 하더라도 아내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이해해 줄 거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때까지 노라는 헬멜의 사랑에 의심을 제기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막상 헬멜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가 마지막 가면 뒤에 남긴 얼굴이 드러나고 말았다. 헬멜에게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돈을 빌린 아내의 사랑보다, 자신의 위치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한 노라의 도덕적 결함이,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자신에게 얼마나 위협적으로 다가올지에 대한 걱정과 분노가 앞섰던 것이다. 크로그스타가 마음이 바뀌어 차용증을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했을 때는, 일단 겉으로 드러난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모든 것이 뒤틀어져 버린 뒤였다. 노라는 자신이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된 인격체로서 대우받으며 살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지 있으면 좋은 귀여운 종달새로서, 살아 움직이는 예쁜 인형으로서 취급당해온 노라는 더 이상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제 누구의 아내나 엄마로 살기를 거부하고 하나의 당당한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 노라는 인형의 집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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